성자 예수가 그곳을 떠났다. 나도 그곳을 떠났다. “성자 예수가 떠나서 하늘로 올랐다”는 계시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매우 당혹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떠난 그곳에는 영광이 사라졌도다!! 나도 같은 계시를 받았고, 내 주변에서도 동일한 계시를 여러 번 받았다. 월명동을 하나님께서 떠났다. 전기 코드가 뽑힌 선풍기는 서서히 정지하듯이, 그 영광이 서서히 사라지고 사람의 영광이 춤추듯 넘쳐날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요, 살리는 피흘림이요, 사랑이요, 낮음이요, 연합이요, 성령충만이다. 사람의 영광은 죽이는 피흘림이요, 경쟁이요, 높임이요, 정복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낯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에녹성을 쌓았는데,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과 동일한 모양으로 가인이 에녹성을 쌓았다. 유대인의 미드라쉬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에녹성이 훗날 바벨탑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야곱이 벧엘에 세운 돌베개에서 시작됐다. 돌베개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내가 떠난 그곳의 교리는 성경적이지 못하다. 통일교 원리강론의 80%를 차용하고, 15%는 영락교회 장로인 한에녹의 영원한 복음에서 가져왔다. 30개론의 순서는 영원한 복음의 순서가 매우 흡사하다. 5%는 새롭게 추가되었으나, 2천년 동안 있었던 이단논쟁에서 ‘마귀의 것’으로 들통난 성경해석들이다. 삼위일체를 삼신론으로 해석한 것, 성자예수를 각각 다르게 해석한 것, 모두 이단의 해석일 뿐이다. 그러한 해석은 결국 성경해석자를 ‘시대의 주’로 포장한다. 역사적으로 모두 그러했다.
예수님이 죽고, 3명의 메시야가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십자가를 부정하는 그 시대 메시야로서 백성이 절대믿음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황금송아지앞에서 춤추듯 그들은 메시야가 아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이다. 그것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
스스로 구원주가 되려는 자는 죄인이 되고, 죄인으로 주님께 낮아지는 자는 시대를 구원할 사명자로서 ‘구원주’가 된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세상의 죄를 용서하는 구원의 능력을 받는다. 그것이 성전기능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신부로서 시대의 죄를 용서할 특권을 갖고 있다. 곧, 시대앞에 그리스도로 보냄을 받는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시대를 구원하라!!
성경을 폐하지 말라!! 성경을 벗어나서 인생이 잘살면, 그 성경해석이 탁월하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정감록은 인간이 만든 거짓 예언서임을 정녕코 알라!! 정감록의 원본이 없는데, 정감록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한다면, 그 말이 무슨 의미인가? 벌거벗은 임금의 쇼에 불과하다. 정감록 자체가 공증되지 못한 예언서임을 알지니!!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한다. 성경원문으로 돌아가야한다. 그곳에서 각자 구원을 확인해야한다. 이 시대 남편은 누구인가? 인생의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가 진정 누구인가?
통일교의 교주가 시대를 구원할 그리스도가 되지 못함으로 새로운 인물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전역사가 그러하듯, 후역사도 동일하다. 모두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의 역사일 뿐이다. 부활의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냈고, 사도 바울을 보냈다. 모두 보냄을 받고, 자신의 역할을 할 뿐이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중매장이로 낮췄다. 자신을 신랑으로 높이는 자마다 ‘뱀의 독’에 물린 바 된다. 이 시대가 과연 그러했다. 에덴동산이 어디인가? 부활의 주님이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오늘도 걸어온다. 그 소리가 들리는가!!
왜, 종교 권력자마다 처음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왔다가 잘되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까? 사람의 영광을 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머물지 않는다. 껍질만 허물처럼 남아있는 그곳에 성령은 임하지 못한다. 가끔, 성령이 그곳을 방문해서, 빼낼 자를 빼낼 뿐이다. 정녕코 그것을 알지니라!!
가령, 말라기 이후 400년 만에 예수님이 왔고, 루터 이후 400년 이후 새로운 메시야가 온다고 그들이 해석하는데, 이런 무식하고 거짓된 교리에 현혹된 자들이여!! 확인하라!! 루터의 사망 이후에 그가 399년만에 태어났으니, 과연 400년의 기점을 채웠지만, 말라기의 사망연대는 어디에 있으며, 예수님의 태어난 연도는 어디에 있는가? 기준점이 없는 거짓의 교리일 뿐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400년의 기점으로 오지 않았다. 식민지 치하에 있는 이스라엘 촌동네 나사렛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눕힘을 당하시고, 33년후에 돌무덤위에 눕힘을 당하셨다. 탄생도 죽음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 탄생과 죽음의 틀속에 창조주가 들어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사람을 다시 창조하셨으니, 그가 곧 ‘구원의 창조주’ 예수님이다. 그리고, 인류문명의 영원한 기준점이 되셨다. 그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이 임재한다. 구원은 성령으로 나타나며, 성령이 임한 자마다 주 예수와 하나다. 성령은 곧 예수의 마음이다.
** 신약성경에서 증언하는 성자예수는 곧 진리의 성령이다. 같은 본체로서 다른 이름이다. 성자예수가 그곳을 떠났다면, 진리의 성령도 그곳을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