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 다양한 천국비유가 나온다. 2번째 천국비유는 “좋은 씨”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그렇다면, 지옥은 나쁜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좋은 씨는 무엇일까? 나쁜 씨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원하는 씨가 좋은 씨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씨가 나쁜 씨다.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 말씀의 씨가 좋은 씨요, “선악과를 따먹어 좋다”는 지혜롭게 보이는 씨가 나쁜 씨다. 종교는 곧 씨와 같다. 어떤 씨가 뿌려지느냐로 사람은 종교적 운명이 갈라진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듯, 기독교인은 교회로, 불교인은 사찰로 각각 갈 것이고, 그 종교가 죽음 이후를 결정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종교다원화 시대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1/4이 기독교인이다. 기독교를 믿는 신도 수가 급증했지만, 여전히 불교인의 인구가 많고, 무속신앙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종교는 문화적 옷을 입고 있다. 천주교가 전래된지 220년, 기독교가 전래된지 120년이다. 천주교가 먼저 전파되었고, 기독교는 나중에 전파되었다. 불교와 유교는 훨씬 먼저 전파되었다. 불교는 전통적 명승지를 가면, 불상과 탑이 국가적 보물로서 자리잡고 있다. 유럽과 대조적이다. 유럽은 성당과 성화(聖畫)가 국가적 보물로 자리잡고 있다. 설날과 추석은 유교적 흔적이다. 제사상을 차리고, 조상들의 묘지를 둘러보는 풍습은 유교에서 나왔다. 민족의 대이동을 통해 한국인들은 모두 유교풍습을 지키고 있다.
만약, 기독교와 천주교가 한국에 뿌려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북한이 그러한 케이스다. 해방 후,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 평양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가장 인본적인 우상정권이 세워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믿어야할 백성이 인본주의 사상이 주입되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외면할 수도 있다. 마음의 밭에 어떤 씨가 뿌려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씨가 뿌려지고, 복음의 씨가 뿌려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반면, 세상적 지혜의 씨와 권력의 씨가 뿌려진다면, 하나님을 외면하는 길로 가면서 비난과 비판과 증오로 얼룩진 인생을 살 수도 있다. 교회안에서 성경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향해 외칠지라도, 먼저는 자녀에게 복음을 외쳐야한다. 씨는 땅에 떨어지듯, 복음은 마음에 뿌려진다.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곧 ‘전도’(傳道)의 핵심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도 하나님의 원수가 밤에 씨를 뿌리고 갔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몰래 하와의 마음에 ‘선악과를 따먹는’ 씨를 뿌렸다. 씨가 뿌려지면, 그 일을 행한다. 씨는 곧 생각과 같다.
불교와 유교가 번창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부국강병 국가로 만들었던가? 약소국에 불과했다.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에 가서 국호(國號)를 허락받았다. 자녀의 이름은 아버지가 짓는다. 그처럼, 조선의 아버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이 동학혁명 이후 세워진 ‘독립문’이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독립후, 대한민국은 기독교 사상이 전파되면서, 세계속으로 서서히 드러났다. 마태복음 6장의 약속처럼 “세상속 빛”의 나라가 되었다. 기독교가 대한민국 전역에 퍼지면서, 5천년 역사속에 가장 빛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어떤 씨가 뿌려지느냐로 국가의 운명도, 개인의 운명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그 가치를 깨닫고 정치와 맘몬신이 교회내부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복음의 원음’을 지켜내야한다. 조선시대 여자들은 ‘숯불’을 꺼뜨리면, 쫓겨났다. 유대인들도 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 불이 곧 성령의 불이다. 말씀의 불이다. 은혜의 불이다. 불이 꺼지면, 교회는 금방 세속으로 물든다. 십자가의 역청을 발라서, 세속과 결별된 교회가 되어야한다. 그 교회가 한국의 미래를 살린다. 대한민국을 부유한 나라로 만드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이것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