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을 읽을 때는 물결이 출렁거린다. 짧은 것도 있고, 내용과 주제가 힘차다. 행동력이 느껴지고, 목표가 뚜렷하다. 마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말한다. 서두에 명확히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가 그것이다.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증거한다. 왕으로서 예수님이 아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대제사장’이다. 세례요한의 등장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소개한다. 제사장의 역할이다. 나병환자를 고치고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한 대목에서도 마가는 “제사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1장과 2장은 모두 죄사함, 제사장, 병자, 귀신과 연관된다. 이것은 대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특히, 안식일날 밀밭 사건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내용인데, 제사장외에 먹어서는 안될 음식에 대해 설명한다. 이 또한 마가의 의도적인 편집이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증거한다.
2장에서 지붕을 뜯고 내려온 중풍병자 사건은 유명하다. 믿음의 능력으로 소개되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핵심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이단교주들에게 자주 악용된다. 악용된 이유는 ‘죄사함의 권세’를 오해해서 그렇다. 이단교주들은 죄사함의 권세를 ‘면죄부’로 이해했다. 왕들은 면죄부를 발부해서, 사면권을 갖는다. 예수님은 그런 사면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어린양의 대속’을 말한 것이다.
마가복음 11:45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인류의 죄가 씻겨졌다. 이것이 태초에서 종말까지의 ‘영원한 심판’이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죽을 운명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심판을 대속제사로서 감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교주들이 “죄를 용서한다”고 말해도, 그러한 말은 효력이 없다. 그 교주에게 지은 죄만 용서될 뿐, 하나님께 지은 인류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용서받는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핵심이다. 레위기와 로마서와 마가복음은 서로 연결된다.
마태의 이름도 “레위”라고 적은 것도 의도적이다. 레위지파는 성전임무를 맡고 있다. 레위를 불렀는데, 그는 죄인이었다.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민족의 반역자로 활동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할 레위지파가 세상에 속해서 죄인으로 살았는데, 예수님이 그를 불렀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가 핵심이다. 이것은 마태를 전도하기 위해 포장해서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그대로 드러난 표현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대제사장으로서 사명이다.
2장 27절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는 선언은 제도를 혁파하는 혁명적 말씀이다. 안식일법은 그 시대 백성을 통제했다. 모든 백성은 안식일법에 갇혀서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법이 백성의 종에 불과하고, 백성이 주인이 되어서 그 안식일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얼마나 위대한 말씀인가? 안식일 때문에 사람이 불편하면 안된다.
제도는 옷과 같다. 옷을 위해 사람이 있는가? 사람을 위해 옷이 있는가? 옷을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마네킹이다. 마네킹은 옷을 위해 존재한다. 제도를 위한 부품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소모품으로 살아간다. 이단에 빠진 모든 인생은 그와 같다.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유함을 만끽한다. 죄가 용서받고, 의인으로 살아간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은 그 죄인을 의인으로 새롭게 창조하시고, 영적 레위지파인 제사장의 직분을 주신다.
어떤 종교단체는 종급-아들급-신부급의 교리로 사람을 현혹시킨다. 예수님의 권능을 업신여기는 거짓 복음들이다. 마가복음 2:18~22 금식논쟁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분명하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다”고 했다.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을 뺏기니, 말씀의 금식을 한다. 반면, 예수님의 신랑을 뺏기지 않은 정통 기독교는 금식을 하지 않는다. 신랑을 뺏기면 금식하고,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혼인잔치를 하기 때문에 금식하지 않는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 삶이 이미 신랑신부의 혼인잔치다. 계시록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라고 되어있다.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요한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고 고백했고, “신랑의 친구”로서 예수님의 혼인잔치를 소개하는 사회자로 자신을 낮춰서 소개했다. 사도바울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성도를 연결하는 중매장이로서 자신을 소개했다. 이단교주는 본래 세례요한의 역할로서 성도와 예수님을 연결하는 중매장이 사명을 맡았는데, 신랑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창세기 3장에 뱀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와를 유혹한 것과 똑같다. 신랑은 오직 예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