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성경과 신앙서적에 파묻혀 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어디선가 소리가 바람처럼 들려왔다. 그때 펜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모르지만, 성령께서 알게 하시면 알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의 감흥으로 씌였고, 모든 책은 작가와 같다.
언젠가, 어떤 신앙서적을 읽고 있었는데, 그 작가를 지하철에서 직접 만났다. 상당히 유명한 분이라서 인사를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내 가방속 책의 주인공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은 곧 작가다.
나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전공할 의지가 없다. 단지, 성경을 읽고 싶을 뿐이다. 이제 성경이 읽힌다. 내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시듯, 내가 원하던 것은 “성경읽기”였다. 나는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삶속에서 성령을 느끼며 살아간다. 교리의 신앙서적들 앞에서 내가 돌이킨 이유가 이것이다. 신앙서적을 읽다가 성경을 잃게 됨을 알게 됐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성경속에 있기로 작정했다.
신앙서적은 탑처럼 쌓고,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는 것으로 바꿨다. 그냥 편하게 ‘에세이처럼’ 신앙서적을 읽는다. 모든 신앙서적은 참고도서일 뿐이다. 외경도 신앙서적에 포함된다. 신앙서적에 너무 파묻히는 것은 외경을 정경처럼 신뢰하는 것과 같다. 교리는 ‘외경의 범주’이다. 정경은 오직 성경이며, 구약성경과 신양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스스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서는 ‘이사야서’를 매우 중요하게 간주한다. 복음서와 이사야서와 로마서를 중심해서 날마다 성경을 읽고, 성령과 함께 기도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내가 마음을 결정하니, 국제기구와 관련된 어떤 사람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인연된 몇 사람이 있다. 사람의 인연은 참 신비하다.
비오는 날, 내가 집으로 가야할 그 때, 내 우산을 챙겨준 교회 A집사가 너무 고맙다. 나도 걱정하지 못한 우산을 나대신 걱정해준 그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과 걱정이다. 비오는 날 우산을 걱정해준 고마움에 나는 추운 날 추위를 걱정하며 A집사에게 ‘따뜻한 무엇’을 선물했다. 배고픈 날, 나에게 국수를 선물해준 교회 B집사의 마음이 고맙다. 국수를 좋아하지 않아서, 1번 먹고 예쁜 포장지를 날마다 쳐다보고 있지만, 그 마음이 내게 와 닿는다.
내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하신다.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성령의 불덩이가 떨어져서, 너를 위해 거부(巨富)가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서 복이 엄청나게 내려오게 해달라고 간구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사랑은 크기에 한계가 없다. 내 어머니!! 내 어머니!! 내 어머니!!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소서!!
나는 낮은 곳에 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관심이 없다. 언젠가 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면, 주님께 감사할 일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살아보니, 내 수준에 맞게 내게 주어진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년, 고달팠다. 또한 보람찼다.
2020년은 대학생으로 살아갈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읽었던 40여권의 신앙서적을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주일성수 지키며, 성경을 중심하는 신앙생활을 할 계획이다. 오!! 성령이여!! 나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