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손에 토스트를 들고 뛰었다. 먹기 위해 빨리 달려, 건너편에서 ‘성큼’ 한 입 먹었다. 오!! 토스트!! 내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 언론인으로 살아갈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 7시 즈음 여의도에 있는 김밥 트럭에서 ‘김밥’을 사먹었다. 그때의 싱그러움이여!! 과거를 기억함은 지금을 살아있게 함이다. 주님의 부활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기억함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물결이 밀려온다.
평판? 그것은 빈 병에 불과하다. 요란할 뿐이다. 마태 공동체, 마가 공동체, 누가 공동체, 요한 공동체가 있었다. 물론, 사마리아 공동체, 막달라 마리아 공동체, 니고데모 공동체 등등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다양한 공동체가 있었다. 다양한 기독교 교회처럼, 독립적인 운영체제로서 교회가 설립됐다. 그 중에서 마가 공동체가 상당히 열악했다. 그런 마가 공동체의 필독서인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를 낳는 자극제가 되었다. 평판? 아무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바알새불’의 가짜 뉴스에 시달렸고, 대속의 십자가는 ‘저주의 십자가’라는 오명을 썼고, 부활사건은 ‘시체 도둑질’로 유언비어가 퍼졌다. 평판? 내게는 자극의 밑거름이다.
오늘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나이까? 결정은 내 고유업무다. 스타벅스와 할리스와 이디야와 까페베네 중에서 어디로 향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쓸까? 늘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고뇌하지만, 그 결정과정에서 성령의 미세한 음성듣기를 사모한다. 오늘은 할리스 커피숍이다. 내가 무엇을 쓸까? 마음의 수면위로 비둘기가 내려앉듯, 성령의 음성을 기다린다.
나는 철학자와 사회학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로 떠들기 때문이다. 단지, 니클라스 루만은 좋아한다. 그는 유럽과 독일의 교육체제를 새롭게 개혁한 위대한 인물인데, 독일교육의 근간을 새롭게 놓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어떤 이론을 말하지 않고, 이론을 정립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의 이론체제는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데, 그 핵심을 배우고, 나는 상당한 유익을 얻었다. 그 사회학자는 모든 이론체제를 존중하면서, 새롭게 적용해서 융합하는 행동이론전문가이다. 이론이 쓸모있으려면 현실과 융합해야하는데, 그는 현실에서 이론을 찾았다.
나의 현실에서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 나사렛에서 성장하고,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펼치시고, 제자 공동체와 함께 3년의 위대한 사역을 펼치신 부활의 주님께서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실까? 부활의 몸으로 엠마오로 낙향하는 제자를 만나신 그 주님께서 장안평 까페에 있는 내게도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