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2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함께 기도함으로 왕의 꿈을 해몽한 사건이다. 3장은 세친구의 간증이고, 4장은 왕의 간증문이다. ‘조서’를 통해 반포되었는데, 왕의 회고록이 다니엘서 4장에 집필된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왕권에서 밀려났다가, 다시 복권되는 독특한 행적을 가졌다. 군사혁명으로 유배를 당했을 수도 있고, 짐승의 마음을 가진 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다가 7년만에 깨어날 수도 있다. 왕으로서 영광이 하루아침에 몰락했다가, 어느날 ‘총명’이 돌아오면서 살아났다. 다니엘서 4장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다니엘 4:22)
다니엘의 해석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해석으로 말씀한다. 왕이 꿈에 본 나무는 ‘자신’이었다. 꿈속에 어떤 나무를 보거나, 어떤 사람을 보거나, 그것은 ‘자신’에 해당할 확률이 높다. 자신의 꿈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려주기 위한 하나님의 묵시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조명하듯, 꿈은 인생의 내면을 알려주는 것이지, 제3자의 상황을 무당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찰자가 내려와 “나무를 베라”고 하니, 그 나무가 베어졌다. 곧, 왕의 추방이요, 병에 걸려 침상에 던져짐이다. 보여지는 것은 그 현상이 정치적 사건이나 의학적 사건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근본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에 의해서 집행된다. 순찰자가 꿈에 나타났고, 1년후에 그 순찰자가 실제로 나타났다. 꿈과 현실의 시간차이는 1년이었다. 꿈을 꿨고, 그 꿈이 실제로 이뤄졌다. 꿈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루터기’는 이사야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루터기’만 남겨진다. 느부갓네살 왕도 ‘그루터기’만 남겨지고 모두 베어졌다. 인내의 욥도 그루터기만 남겨졌다. 모든 가족과 재물이 다 사라지고, 생명만 남겨졌다. 친구들이 원수가 되어서 날마다 괴롭혔다. 그런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신뢰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짐승의 마음이 임했고, 7년 동안 들풀을 먹으면서 백성의 신분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루터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근본의 마음”이며, “하나님이 나라를 다스리는 줄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7년의 때가 차서, 복권된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것을 고백했다. 그 7년이 70년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레스 왕때 바벨론 귀환의 축복을 받는다. 느부갓네살 왕은 곧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게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꺽었고, 70년의 포로생활을 통해서 다시 그 영광을 복권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2장에서 엄청난 꿈과 해석을 받았다. 그러나, 금신상을 세우면서 교만이 하늘까지 높아졌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심으로 그의 나라가 더욱 견고해진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나라를 다스리고, 자신이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권력으로 사람들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것이 교만이다. 이단교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자신의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돕는다고 착각한다. 이단교주는 한 그루 나무에 불과하다. 순찰자가 “베어라”고 하면, 모두 흩어진다. 예수님도 “목자를 치니, 양들이 흩어진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높아진 자는 낮아지고, 낮아진 자는 높이신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신상을 세워서 자신을 지극히 높이니, 순찰자가 내려와서 그 나무를 베었고, 그루터기만 남겼다. 그루터기까지 낮춘 것이다. 권력과 부귀와 지혜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베어라”고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은 항상 있어야한다. 그 경외심이 ‘그루터기’요, ‘뿌리’다. 뿌리가 썩으면, 나무의 열매가 맺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