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에서 ‘구원과 죄’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구원은 죄사함이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게 용서받는가? 내가 이단교회에 있었을 때, 그 개념이 정말로 모호했다. 구원주는 분명 예수님인데, 다시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누구도 감히 ‘한때두때반때의 다니엘 환산 풀이’앞에 질문을 던지지 못하였다. 질문을 던지면, 그것은 출교요, 구원의 박탈이다.
유대교의 율법이 주는 구원에서 박탈된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했다. 예수님은 율법이 정죄한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버려짐을 당함으로 부활을 이루셨다. 출교,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단체로부터 출교당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함을 두려워해야한다. 종교단체는 제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제도를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다.)
내가 이단교회를 떠나고, “그 구원주가 구원주가 아님을 확신한 사건”은 십자가의 피흘림이다. 내 무지가 ‘구원의 근원’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분명히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했다. 그러한 몇가지 사건 때문에, 예수님의 사명위치에서 사역자들이 “죄사함을 받으라”고 한다. 죄를 사하는 그 존재가 구원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원주이다. 베드로가 죄사함의 부흥집회를 했다. 누구의 이름으로 죄사함의 능력을 선포했을까? 그 사면권이 누구로부터인가? 국가의 사면권은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땅과 하늘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으니,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이뤄진다.
구원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스스로 의로운 공적을 세워서 구원을 받는 종교가 있고, 하늘에서 은혜를 베풀어서 구원을 받는 종교가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후자에 속한다. 하늘에서 은혜를 베풀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기독교다.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근원이 무엇인가? 구원받기 위함인가? 그러한 교회활동은 구원과 직접 상관이 없다. 교회는 천국이요, 성령을 믿는다면, 이미 구원이 임했다. 천국시민으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십자가 신학을 너무 몰라서, 정통 한국교회가 헤매고 있다. 과연, 부활의 주님께서 지금 살아계시면, 국가제도를 향해 어떻게 행하실까? 주님은 이스라엘의 식민지 지배를 해방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다. 죄에 빠진 그 시대 백성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러 오셨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서, 주님께서 죄값을 ‘피흘림’으로 계산하고, 성도들과 하나님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남북통일보다 시급한 것이 땅과 하늘의 통일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통일이다. 성령과 성도의 통일이다. 남북통일이 된다고 천국이 되겠는가? 남북통일이 ‘지옥문’을 여는 열쇠가 되면 어쩌려고?
다니엘서에 남방왕과 북방왕의 대결이 나오는데, 그때 북방왕이 침략하면서 헬라제국의 종교탄압이 시작됐다. 그 존재가 ‘미운물건’을 세운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 에피파네스(안티오커스 4세)가 성전을 모독하고 미운물건을 세운 때가 BC167년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남북통일이 기독교의 멸망을 가져오면 어쩌나? 그래서, 성도와 성령의 교제가 가장 핵심이다. 그대 심령에 성령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가?
구원은 누가 주는가?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전하는 많은 사역자들이 있다. 바울이 전한 예수님, 베드로가 전한 예수님, 누가가 전한 예수님, 마가가 전한 예수님 등등 모든 예수님이 같고, 그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보다 전하는 자를 숭배하면, 구원이 단절될 위험이 있다. 조심해야한다. 구원주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이다. 이것을 명심해야한다. 한국교회는 일부 교단과 목사들이 자신들의 공적으로 건물을 세우고, 성도들의 부흥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과연, 자신들의 공적으로 해냈다면, 그것은 사람이 행했으므로 성령의 능력은 훼손된다. 사람이 행했으나, 그 계획을 성취하신 분은 성령님이다. 이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목회자에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한다. 그 분은 예수님처럼 가난한 목자가 되어서 한국의 성도를 품었다. 그는 이단으로 매도당한 한에녹 장로를 끝까지 사랑하였다. 그 울림이 너무 거대해서, 지금도 그 분의 향취를 흠모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이 목자의 길이다.
2단계 칭의론은 율법적 구원론이다. 유대교 구원관이 율법적 공적 구원론이다. 행위 구원론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행위는 ‘사람의 행위’다. 성경은 줄곧 ‘하나님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믿음과 의’를 통해서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한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니, 창조주께서 구원도 창조하신다. 피조물 스스로 만든 구원은 ‘피조물의 구원’일 뿐이다.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그곳에 하나님께서 사실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십자가는 ‘율법’을 구원시킨 ‘하나님의 언약’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한번 약속한 구원은 철회하지 않으신다. 세상의 악한 아버지도 그 아들을 끝까지 사랑하는데, 하물며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그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리신 그 분의 사랑을 믿어야한다. 한번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하다. 그런데, 왜 성경은 “구원에서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을까? 그 또한 깊게 고민해야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도의 죄를 용서한 것이지, 성도의 공적으로 죄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구원을 받고 죄를 즐기면 되겠는가? 마땅히 거룩한 성령의 행실로서 열매를 맺어야한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근원도 성령께서 하실 것이다.
한 번은 꿈을 꿨다. 어떤 여인이 나왔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그 여인이 나를 불렀다. “창훈아!”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답했다. 나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시는 그 여인은 누구인가? 누가, 나를 새롭게 부르시는가? 참으로 신비한 꿈이었다. 부르심의 소명은 변함이 없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결실을 이루신다. 복음과 반대방향으로 갈지라도, 하나님은 구원의 뜻을 꺽지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사람이 행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사람이 밭이 되어서 구원의 씨를 함께 품는 것이다.
어떤 신앙서적은 유대인들의 회개운동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는 ‘조건’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그럴까? 바벨론 포로생활도, 바벨론 해방도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단지,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판단의 여건일 뿐이다. 농부가 모든 농사일을 하듯, 구원의 농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다. 100%다. 구원의 확증이 심령에 임하면, 성령을 통해 성경을 찾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심령에 머물러 계시는 근원자가 누구인가? 맘몬신인가? 성령님인가? 교회에 출석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구원이 박탈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가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구원의 근원을 말한 것이다. 왜 예배를 드리는가?
구원의 근원에 대해, 다니엘서가 정확히 말하고 있다. 구원은 “꿈”과 같다. 꿈은 누구의 것인가? 느부갓네살이 꿈을 꿨다. 꿈내용을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꾼 꿈이니까,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꿈은 하나님이 주신다. 꿈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간구하니, 하나님은 말해주신다. 느부갓네살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꿈은 하나님의 소유다. 게다가 하나님은 꿈과 해석을 모두 주셨다. 선지자는 문제와 답을 함께 받는다. 느부갓네살은 꿈만 받았다. 꿈과 해석을 함께 받아야한다. 율법은 꿈이요, 은혜는 ‘율법의 해석’이다. 율법은 죄요, 십자가는 그 죄를 해결하는 ‘해석’이다. 꿈이 하나님을 통해서 내려오듯, 구원도 그렇고, 지혜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고, 돈도 그렇다. 이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예배자의 자세’다.
그대,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자유하라! 찬양하라! 성령으로 행하라! 죄의 침입을 대비하라! 하나님께서 그대를 영원히 보호하시리라! 성령의 은혜가 깊다면, 십자가 군사가 되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라! 구원의 뿌리가 깊어짐으로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오!! 그대 구원을 받았는가? 이 보다 기쁜 일이 어디에 있는가?
** 대부분 이단교회는 인간행위 구원론을 가르친다. 그것은 비진리요, 거짓복음이다. 창세기 3장 뱀의 말이다. 인간행위구원은 십자가 구원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흘림을 통해서 선물로 주신다. 이것을 명확히 알아야, 영생을 얻는다. 영생은 영원한 창조주를 상속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