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봤었다. 쿵쾅쿵쾅쿵쾅!!! 그 떨림!!! 남편이 출근하고 남겨진 집안의 살림!!! 그렇게 여자의 삶이 살아감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여성인권을 위해 만들었다는 어떤 뉴스도 내 마음의 감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삭막한 뉴스여!! 감동은 각자다. 나는 따뜻한 살과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나는 그 영화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신 주님을 보았고, 디베랴 호수에 낙향한 베드로를 만났고, 구석에 밀려난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보았다. “빙의”는 많은 것을 함축한 ‘비밀의 언어’였다.
“빙의”(憑依)는 위험하다. 신내림의 단어다. 단지, 지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는 ‘감정이입’의 방법이 있다. 역자사지(易地思之)도 같은 단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육아휴직을 낼 때, “포기할 줄 아는 행위가 사랑이다!!”라고 느껴졌다. 때론, 어떤 것을 포기해야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 아들의 뜻을 포기하신 주님의 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위해 버려졌다. BC04년생 예수님!!
나는 72년생 장창훈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 순천고에 입학해 아버지의 자랑이었고, 이단교회에 빠져서 집안의 근심거리로 추락했던 89년이 엊그제다. 해병대를 전역하고, 나의 국민대는 ‘신문배달과 아파트 세차’였다. 살아가는 것이 고단했던 그 시절, 나는 신문배달을 위해 새벽을 깨웠다. 침묵의 새벽 3시,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에 일어났다.
졸업하던 그 즈음 IMF가 터졌다. 72년생은 IMF 학번이다. 기아 자동차에 입사한 대학선배는 기아(飢餓)에 시달렸다. 졸업하고도 학교에 남아서 배회하던 나의 학우들과 함께 나의 사회생활은 ‘최저임금’과 거리가 멀었다. 역행하듯, 나는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불렀고, 날마다 신문배달 대신에 새벽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잡았다. 훗날, 신문기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밀한 도우심을 어찌 부인하랴!!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가죽옷을 주셨다.
사람은 사연의 피와 살로 살아간다.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몹시 고단하며, 나를 떠난 전처의 행복을 간구한다. 나는 가난하였으니, 어이하랴!! 나는 언론인으로서 네이버의 많은 뉴스를 읽을 때, ‘삭막한 정보를 서술하는 비판 기사’보다는 ‘사람의 고뇌를 보여주는 참된 문장들’이 더욱 와 닿는다. 사람은 심장이 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격체다.
1년이 흐르듯 10년이 흐를 것이다. 미래의 그때에서 지금을 보며, 나의 하루가 소금의 짠맛이 없어지지 않도록, 현실의 삶에 충직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존하는 믿음의 담력을 향상하며, 오늘도 성령으로 살아가야겠다. 나는 장창훈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