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정의할 때, 나는 “가방속을 보라”고 자주 말한다. 가방속은 마음속이다. 집을 떠날 때, 가방속에 무엇을 제일 먼저 챙기는가? 핸드폰과 지갑을 제외하고, 무엇을 최우선으로 챙기는가? 그것이 자신을 정의한다. 나는 노트북이다. 어디를 가던지, (교회예배에 참석할 때만 제외하고) 노트북은 필수품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다.
가방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놨다. 놀랍게도, 한문 성경책, 요한계시록 성경주석,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앙서적, 복음이란 무엇인가(김세윤) 바울신학 개론, 클릭 바이블!!(명지대학교 출판부)와 노트북, 향수, 볼펜 몇자루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나로 성경을 흠모하게 하였는가?
꼬박 1년동안 복음서를 1장씩 읽었다. 2월말에 시작했으니, 10개월 동안 했다. 4개월이 순환 사이클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5번째 깊게 탐독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1달에 2번 읽는다. (매일 1장씩, 16장이어서 그렇다.) 오늘은 13일 마가복음 13장을 읽었다.
“이와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막13:29)
‘이런 일’은 무엇이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일을 보았는가? AD70년에 헤롯성전이 멸망했으니,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는 그것을 목격한다. ‘이런 일’은 성전멸망일까? 13장 전체에 나타난 모든 사건을 말할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초대교회에 엄청나게 많았고, 특히 성전을 중심으로 3명의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했다. 이단교회에 몰려드는 성도들처럼 그 시대도 그러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했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 이것은 이스라엘 독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예수님은 성전멸망을 예언하셨다. 그런데, 왜 무화과 나무 비유가 1948년 5월 14일을 말하는 것인가?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자연과 계절’의 비유다. 비유를 해석할 때, 상징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하면 안된다. 이스라엘 독립과 인자의 영광을 연결하면, 마가복음 13장의 예언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성전멸망이 발생하면, 그 때에 인자의 영광과 권능을 보게 되는데, 왜 이스라엘 독립이 인자의 영광과 연결되는가?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독립으로 확대해석하지 말아야한다. 그렇게 해석하는 자들은 ‘인자가 구름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종말로 해석해서 그렇다. 우주적 종말이라면, 왜 그 때에 천사들을 보내서 택한 자들을 복음으로 부르겠는가? AD70년 이스라엘의 공식적 디아스포라를 뜻한다. 유대교가 흩어지듯이, 기독교 성도들도 흩어지면서, 흩어진 그들이 천사가 되어서 택한 자들을 부르는 것이다.
우주적 종말의 때가 오면, 모든 자들이 주님의 임재를 목도한다. 그러나, 시대마다 나타나는 말세에는 인자의 영광을 보는 자만 본다. 그래서 자연과 계절의 비유가 나온 것이다. 누가복음 21:29에는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했다. 곧 자연과 계절의 관계를 비유한 것이다. 여름이 온 줄 어떻게 아는가? 여름을 보는 자는 없다. 단지,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나오면 여름이 온 것을 안다. 그처럼, 마가복음 13장의 사건을 보면, 인자의 영광이 임한 것을 믿어야한다. 각 개인에게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사회도 동일하다.
13:8에서 ‘재난의 시작’이 나오고, 13:24에 ‘해달별의 추락’이 나온다. 이것이 곧 말세징조다. 말세징조가 나타나면, 그때 인자의 영광이 임한다. 인생가운데, 어떤 기근과 환란과 고통과 해달별의 추락이 있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한다. 흩어짐을 통해 하나님은 그 택한 백성을 부르신다. 전쟁과 환란과 피난이 곧 인자의 영광이 나타나는 전조현상이다. 그래서, 누가는 담대히 증언한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거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