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읽고 있다. 법률 판결문과 그 해석을 읽는 느낌이다. 산헤드린 의회 국회의원 출신인 사도 바울의 언어는 매우 ‘법률적’이다. 율법(律法)은 법률(法律)이다. 지금 시대는 제정분리시대이지만, 예수님 시대는 대부분 제정일치사회였다. 로마서를 읽고,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를 듣고, 루터의 로마서 강해집을 참고하며 로마서를 살펴보니, 확실히 이분법이다.
하나님은 마귀를 이긴다. 빛이 어둠을 이기듯, 싸움을 하지 않아도 이미 승부는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땅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은 다르다. 큰 전쟁은 십자가로서 하나님께서 승부를 결정지었으나, 각 사람의 심령에서 일어나는 국지전(局地戰)은 승부가 엇갈린다. 하나님이 이길 수도 있고, 마귀가 이길 수도 있다. 마귀가 마귀인 것은 ‘마귀의 속성’이 ‘마귀’로 존재해서 그렇다. 어둠은 “어둠으로” 빛을 이긴다. 빛은 어둠을 이기지만, “어둠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어둠이 빛을 받아드리면, 어둠은 어둠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열려 있으나, 만약 어둠이 차지하면, 어둠이 권세를 잡으면, 어떤 빛도 용납하지 않으면, 어둠이 이긴다. 쇄국정책이다.(불교를 믿는 사찰에서 십자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속을 자세히 살펴야한다. 맘몬신이 차지했는지, 권력신이 차지했는지, ‘자기명예욕’이 차지했는지, 자신의 마음을 수시로 살펴야한다. 나는 자주 내 마음을 살펴본다.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는 하늘의 음성이 예수님께 들렸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다. 그때, 성령에 이끌려서, 성령에 내몰려서, 어디로 갔던가? 마귀의 시험을 받았다. 마음속에서 마귀의 소리, 성령의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그것을 인간의 지성이 구분할 수 있을까? 구분할 수 없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곧이어 뱀이 말씀으로 유혹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소리와 뱀의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그때, 우리는 무엇으로 분별해야하는가? 주님은 ‘성령충만’으로 뱀의 말을 분별하고 물리쳤다. 정답은 “성령충만”과 “말씀”이다.
내 마음은 항상 삼국지다. 사도 바울은 “생명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운다고 했다. 마음속에 성령과 마귀가 항상 전쟁한다. 구원받았는데, 왜 마귀가 들어오는가? 이런 질문이 들겠지만, 구원받았으니 마귀가 들어온다. “구원의 박탈”을 목적으로, 마귀가 유혹한다. 복권에 당첨됐는데, 왜 사기꾼들이 찾아올까? 당첨됐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드러나니까, 마귀가 찾아온다. 그때, 마귀를 물리치는 능력은 성령께서 주신다.
마귀의 유혹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자신’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4장에는 2번째 시험문제다.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받아줄 것이다”는 성경구절로 마귀가 유혹했는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시험이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혈루병 여인의 피흘림이 멈췄다. 그 능력은 누구로부터인가? 혈루병 여인의 강한 믿음이 치료의 효험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은 하나님이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다. 누구도, 마귀도, 천사도, 왕도, 사람의 자유의지를 손댈 수 없다. 자유의지는 스스로 갖는 결정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 자유의지로 3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1) 하나님, 2) 마귀, 3) 자신이다. 3개의 선택중에서 사람은 1가지를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1번을 선택할 때, 성령께서 마음땅을 다스리므로 그 영혼이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마귀를 섬기거나,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마음의 삼국지 땅에서 통일할 분은 오직 성령님이다.
남편(男便)은 “내 편인 남자, 편한 남자”다. 여편네는 “여편(女便)”으로 “내 편인 여자, 편한 여자”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누구 편이 되어 살 것인가, 자유의지의 선택문제다.
** 사람이 성령과 마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믿을 때, 성령께서 마귀를 분별해서 몰아낸다. 이것이 마태복음 4장 핵심이다. 성령을 믿고 행하면 실패가 없다. 겉보기에 실패한 것 같아도 성공으로 가는 첩경이다. 십자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