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핵심은 “의인과 죄인”의 구분이다. 유대교는 율법을 통해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이 ‘인간의 의’다. 로마제국은 그들의 제도로서 땅을 정복하고, 전쟁에서 이기고, 사람을 죽여서 공로가 많아야 ‘영광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다. 백마를 타고 개선장군이 되는 ‘의로움’은 전쟁의 살육으로 얻어진다. 이것도 ‘인간적 의’다. 연말에 이곳, 저곳에서 ‘올해의 인물’로 수상의 영광이 들려온다. KBS와 MBC와 SBS는 각각 “올해의 여우주연상”을 비롯해서 각종 시상식을 진행한다. 그들의 기준으로 “의로운 인물”을 선정한다.
로마서는 정확하게 “인간은 죄인이라서, 죄를 짓는다”고 단정한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그래서 의를 행할 수 없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죄인은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없다. 동물중에서 사람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동물이 있는가? 그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없다. 그래서 ‘의인’이 될 수 없다. 의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의인이 되어야한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연다. 그렇게, 의인이 되어야만,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다. 의인이 되는 법이 무엇인가?
결국, 로마서는 “의인되는 법”을 알려준다.
“의인이 된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다. 죄를 지었는데, 왜 죄인이 아닐까? 국회의원도 면책특권이 있다. 모든 죄는 법으로 판결을 받으면서 드러나는 것이다. 죄가 있지만, 씨앗으로 존재하면 죄의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죄”로 판단하지 않으면, “무죄”다. 무죄는 곧 “의인”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의인”이다. 의인이 되는 법은 “하나님앞에서” 의인이 되는 법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누가 의인인가?
“죄를 인정하는 자”이다. 곧, 하나님은 “죄인”을 “의인”으로 판단하신다. 여기서 “죄인”은 하나님앞에 죄를 인정하는 자이며, “의인”은 하나님앞에서 의인이다. 하나님은 죄를 자복하는 자의 죄를 용서함으로 “의”를 주신다. 어찌 이런 일이? 죄가 어떻게 의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다. 홍해가 막았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앞에, ‘덫’이 ‘길’이 되었다. 물이 뭍이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다. 구원은 “죄”가 “의”로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의인이 되는 첩경은 ‘죄’를 인정하고, 죄인이 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세상은 “의인”을 “의롭다”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평가하신다. 로마서의 핵심골자다. 로마서가 정의하는 ‘의인’는 ‘성령을 받은 죄인’이다. 죄인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이것이 이신칭의다. 이신칭의의 절대조건은 “죄인”이다. 하나님앞에 의인이 되는 자격기준이 “죄인”이며, “성령”이다. (하늘법정에서 ‘죄’를 인정하는 순간, 십자가의 은혜로 특별사면권이 적용된다. 죄인일 때, 의인이 된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면책특권이 없어서 그저 ‘죄인’이다.)
** 루터와 바울의 공통점은 “법률가”이다. 루터는 법률을 정공했고, 신학자였고, 대학교수였다. 바울도 산헤드린 국회의원 출신이며,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율법을 전공했다. 바울은 로마제국과 복음으로 싸웠고, 루터는 로마 교황청과 복음으로 싸웠다. 바울은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쉽게 번역해서 ‘편지’를 썼고, 루터는 성도들에게 번역 성경을 선물했다. 두 인물은 공통점이 매우 많다.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