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는 무엇인가? “구원”(救援)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죄의 반대말은 “의”(義)다. 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됐다. 정전(停電)이 되면, 촛불을 켜거나 어둠에 속한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어둠에 속한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죄는 “메시야를 죽인 죄”가 아니고, “메시야를 믿지 않은 죄”이다. 메시야를 믿었다면, 메시야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단종교는 이런 이유로 “예수님이 죽지 않은 것이 뜻이다”라고 한다.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죽인 것이 “죄”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것도 “뜻”이다.
유대인들이 죽이지 않았다면, 로마제국을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갔을 것이다. 그 표본을 “바울”이 보여줬다. 게다가, 주님은 모든 사역이 “십자가의 길”이었다. 유대인만 보더라도 “식민지의 십자가”를 이미 짊어지고 있었다. “십자가는 뜻이 아니다”는 어리석은 교리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단교주가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림의 무효성”을 뜻한다. 그것을 정녕코 알아야한다. 모르니까, 미련하니까, 이단교주의 ‘죄사함’을 믿는다. 그것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의미가 없다.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의 도장과 짐승의 도장이 나온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세속적인 단어로 “하나님의 도장”은 하나님의 부적(符籍)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부적은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다. 짐승의 표를 받는 목적은 그 부적으로 ‘재앙’을 막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도장을 맞는 목적도 동일하다. 십자가를 믿는 자는 예수님이 구원주다. 구원주는 오직 1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는 ‘대속적 그리스도’로서 ‘구원주’다. 예수님 외에 구원주가 있다면,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으려는 이방인 기독교인”을 향해 격노했다. 십자가의 피흘림을 믿는다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할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복음”을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율법에 의한 의로움을 따른 것이다. 십자가를 믿는다면, 또 다른 복음을 믿지 않는다. 또 다른 복음을 믿는 것은 “죄사함”을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율법의 죄”를 대속했다. 십자가를 통해 ‘사람과 하나님’의 모든 관계가 회복됐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가 없다. 그런데, 왜 이단교주에게 “죄”를 자복하는가? 자범죄, 유전죄, 연대죄, 등등 각종 죄들이 열거되는데, 예수님은 “죄”를 청산했다. 노비문서를 불태우듯, 죄문서를 100% 없앴다. 예수님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 “죄사함”을 간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메시야를 믿지 않은 죄”이다. 메시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시대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