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교회는 “죽을 사(死)”와 “생각할 사(思)”다. 사사(死思)는 사데교회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데교회는 “죽은 교회”다. 풍요로움에 빠져서, 썩은 교회가 되버렸다. 주님은 3가지를 명령한다. 수업시간에 학생이 졸고 있으면, 분필을 던지면서, “잠 깨!! 일어나!! 정신차려!!”라고 하듯이, 주님은 사데 교회 전체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네가 복음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서 회개하라.”
3가지 명령어는 ①기억하라 ②지켜라 ③회개하라이다. 회개를 하기 위한 3단계다. 회개를 하려면, 먼저 “복음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것을” 기억해야한다. 기억한 후에, 그 복음을 마음과 행위로 지켜야한다. 이후에 “회개”가 나온다. 기억과 지킴과 회개는 “반복적으로, 날마다, 습관적으로” 해야한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정말로 잘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돕는 베필”도 허락했다. 아담은 ‘직장’과 ‘배우자’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얻었다. 배우자를 얻고 나서, 아담은 생각이 살짝 맛이 갔다. 결혼생활이 너무 좋으면, “죽음”을 망각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나무의 열매”를 세워놓고, “죽음”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까먹은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고서, “죽음”을 망각한 젊은 부부가 되었다. 사망을 망각하면, 사망이 지배한다.
“복음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곧 “십자가”다. 복음의 출발점은 “십자가”다. 주님의 십자가는 “사망과 부활”이며, 우리의 죄 때문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의인”이 되었는데, 의(義)는 주님의 의로움이다. 그것을 망각하고, “의인의식”에 사로잡혀서,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사데교회 꼴이 된다. 교회든, 세상이든, 높아질수록 “하나님앞에” 나는 어떠한지, 그것을 날마다 거울을 보듯 반성해야한다.
기억하라!! 지켜라!! 회개하라!!
사데교회에 몇 명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흰 옷을 입고서 주님과 함께 다닌다. “기억과 지킴과 회개”를 통해서, 흰 옷을 입게 된다. “기억”을 통해서 항상 주님과 동행하면, 말씀이 함께 하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항상 붙어있다. 그처럼, 주님과 날마다 동행해야한다. 하루는 기독교인으로, 다음날은 비기독교인으로 산다면,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은 양털로 된 신발을 신고 계신다. 그래서,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걸어서 오시는데, 소리없이 오신다. 깨어 있어야 그 미세한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성령의 바람소리를 느낄 수 있고,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사람도 인기척이 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양털로 된 신발을 신고 걸어오셔도, 그 표시를 분명히 하신다. 사람도 “노크”를 하는데, 하나님도 마음문을 노크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분명히 약속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