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3가지로 묘사된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 거룩함은 ‘구별됨’이다. 주님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대속적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다. 그것이 ‘거룩’이다. 하나님의 영은 세상의 흑암 위로 운행하신다. 노아의 방주는 수면위에 떠서 다녔다. ‘거룩’은 ‘세상바다의 수면위’로 다니는 것이다. 맘몬신이 다스리는 돈의 수면위로 다니는 것도 ‘거룩’이다.
“진실함”은 헬라어로 ‘알레티노스’다. 헬라어에는 진실을 뜻하는 단어가 2개 있다. 알레테스와 알레티노스다. 알레테스는 ‘진실한 진술’을 뜻하고, 알레티노스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한다. 주님은 ‘알레티노스’다. ‘모호한 짝퉁’이 아니다. 헤롯은 ‘에돔족속’ 출신으로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후예다. 에서는 야곱을 닮았다. 그처럼,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닮았다.
헤롯은 다윗의 전설을 이루기 위해 ‘헤롯성전’을 지었다. 전설을 이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자, 죽이려고 했다. 가짜는 진짜를 죽여서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진리’ 그 자체여서, 헤롯성전을 감람산에서 보시면서, 성전멸망을 말씀으로 행하셨다. 말씀이 선포되자, 40년후에 성전이 멸망했다. 예수님의 말씀이 파괴적 창조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창조는 ‘파괴’도 포함한다. 이 시대도 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거부하는 자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이다.
소금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짠 맛이 없는 소금은 밖에 버려져 짓밟힐 뿐이다. 짠 맛이 무엇인가? 예수님이고, 성령님이다. 성령이 계실 때, 사람은 소금이 될 수 있다. 소금과 빛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뜻한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근본은 ‘제도’가 아니다. ‘세례’도 아니다. ‘착한 행실’도 아니다. ‘성령’이다. 심령속에 성령이 있으면, 그는 ‘소금’이다. 성령소금이다. 짠 맛이 없으면, 소금돌은 밖에 버려지듯, 사람은 세상에 던져진다. 성령이 있으면, 소금은 계속 쓰임을 받는다. 짠 맛은 그래서 성령이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뱀과 전갈을 짓밟아서 뭉갠다. 성령이 없으면, 세상에 짓밟힌다. 성령을 받은 자는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니, 왕의 행차다. 예수님이 심령속에 없으면, 빛이 없으니 어둠에 묻힌다. 심령속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표식이다. 한국인은 주민증과 주민번호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생명증과 생명번호가 있다. 그것이 ‘성령’이다. 성령을 받은 자는 생명의 호적에 기록된다. 생명의 호적이 ‘생명책’이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성령을 받은 자’를 말한다.
‘다윗의 열쇠’은 천국의 열쇠이며, 새 예루살렘의 열쇠이다. 예수님이 천국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이 아니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적그리스도이다.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이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