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마귀 시험 3가지를 모두 이겼다. “말씀”으로 이겼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을 듣고,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어떤 공적과 업적과 수도생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다. 메시야 자격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사람끼리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고, 상대도 “나도 너를 서랑해”라고 하면, 둘은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아무리 몸을 섞고, 입을 맞추고, 같은 이불을 덮으면서 살아가도, 그 마음이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지 않으면, 연인이 아니다.
마귀의 3가지 시험을 유념하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을 앞세우면서, 마귀는 접근한다. 마귀의 소리와 성령의 소리가 여기서 갈린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줄께”라면서 접근한다. 반면, 성령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다. 마귀는 달콤한 유혹을 미끼로 던지고, 성령께서는 꿈을 바로 이뤄주신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다. 하와도 동일하다. 뱀 말을 듣고, 하와가 “마귀새끼!! 물러가!!”하면, 마귀는 물러갔을 것이다. 모르면, 속는다.
예수님이 40일동안 금식하고, 마귀가 유혹하자, 그때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어야한다. 교회성전을 믿지 말고, 성도 숫자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은 살아야한다. 거룩한 성에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을 때에도 주님은 뛰어내리지 않았다. 십자가 사건을 말한다. ‘십자가’는 치욕과 모멸과 세상적 오명(汚名)이다. 주님은 사형수가 되어, 죽으셨다. 주님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십자가를 거부하거나, 경홀히 여기는 자마다 십자가의 능력이 사라진다. 십자가는 영혼을 소생하는 구원의 능력이다. 아멘!!
높은 산에 데려다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엎드려 절하라”고 마귀가 유혹하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다. 이 문장은 베드로가 십자가를 반대했을 때, 동일하게 반복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육체를 ‘세상 왕’처럼 믿고 경배하니, “사탄아! 물러가라!”고 한 것이다. 오직 경배받으실 분은 하나님이다. 세상 지도자, 교회 지도자,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앞에 대리인에 불과하다. 지도자를 사랑한다면, 그 지도자를 쓰는 하나님의 경배하고, 성령을 섬김으로 그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줘야한다. 지도자에게 종속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
왜, 세례요한은 붙잡혔을까? 요한복음에는 유대광야 시험과 요한의 투옥 사이에 1년 정도 기간이 있었다. 마태는 1년의 기간을 생략했다. 예수님이 에세네 파에 속해서 활동하던 시기는 사도 요한과 안드레만 알고 있었고, 마태는 나중에 전도되면서 그때 일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왜, 세례요한은 붙잡혔을까? 왜 예레미아는 옥에 갇혔을까? 붙잡힌 요한과 시험하는 마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물세례를 받은 그 현장에 있던 세례요한조차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도, 본인의 생각이 잘못되면, 주님을 따르지 못한다. 세례요한은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냈을 뿐, 본인은 직접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까지 의심한다. 세례요한은 본인을 “신랑의 친구”로서 소개했다. 신랑의 친구는 ‘혼인잔치’를 선포하는 사회자다. 결혼식 사회자가 결혼식에 참여했다가 밖으로 가면 안된다. 끝까지 결혼식 사회를 봤어야 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의 제자로 활동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스승으로만 남았다. 예수님이 ‘성육신한 하나님’인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성령으로 믿었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가버나움으로 거주지를 옮기셨다. 가버나움은 세례요한의 두 제자인 안드레와 사도 요한이 살았고, 베드로와 야고보도 살았다. 이스라엘 1세대는 신광야에서 남겨지고, 2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듯이, 세례요한의 1세대는 예수님을 만났으나 영접하지 못하고, 2세대에 속한 사도 요한과 안드레와 베드로와 야고보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천국은 그들이 차지했고, 십자가의 피흘림을 믿는 자마다 천국문에 들어갈 수 있다. 돈, 권력, 능력, 부귀영화를 추구하다가, 가장 중요한 구원을 잃을까, 유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