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以信稱義)는 하나님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는 것이다. 한번 의인이면, 영원히 의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보면, “믿음의 파선”을 경고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말씀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절대불변의 진리이다. 곧,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안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구원의 영생”이 확정된다. 그런데, 마귀는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믿음”을 공격한다. 그저, 세상향락에 빠져서, 구원의 영생을 등한히 여긴다면, “하나님의 믿음”이 서서히 흐려지면서, 믿음이 암초에 걸려서 침몰할까, 두려워하라!! 왜, 하나님이 믿어지고, 십자가가 믿어질까? 그것은 사람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믿음이 들어와서 그렇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한다.
하나님은 한번 준 그 믿음을 다시 뺏지 않고 영원히 상속했다. 그런데, 마귀가 그 믿음을 뺏으려고 호시탐탐 노린다. 마귀가 유혹한다고 해서 믿음이 쉽게 파선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가 주는 덫, 죄에 빠져서 방탕하게 살게 되면, 어느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고, 마귀가 믿어진다. 그러면, 그 영혼은 어찌 되겠는가? 히브리서는 그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믿음은 여행과 같다. 한번 받으면, 그것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견디는 것이 곧 ‘믿음’이다. 믿음의 여정을 끝까지 견뎌야한다. 날마다 믿음을 견고히 하면서 하나님을 바란다면, 구원은 즐거움이다.
이단계 칭의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마귀의 유혹에 방점을 크게 찍어서 그렇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번 구원을 받은 자가 지나친 의인의식에 빠져서 교만해진다면, 성령이 걱정하면서 믿음이 파선될 수도 있다. 믿음이 파선되면, 십자가의 은혜가 사라지고, 세속에 푹 빠져서 살게 된다. 그때, 주변 성도들은 그 영혼을 위해서 울부짖을 것이니, 성령의 은혜가 다시 임할 때까지 그 영혼은 바깥에 속할 것이다. 얼마나 비참한가? 이런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이단계 칭의론이 유효할 수도 있겠지만, 성령을 한번 받으면 성령에 따라 살아가므로 구원은 영원하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그 생명이 죽을 때까지 영원하듯, 구원은 영원하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약속했다. 믿음으로 그 백성이 홍해를 건넜고, 2년동안 시내산에서 율법을 하사받고,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 땅에 정탐꾼까지 보냈는데, 10명이 악평하고, 2명만 선평했다. 그때,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형벌기간에 들어선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주어졌는데, 약속을 받은 자는 들어가지 못하고, 후세대가 들어갔다. 그것은 믿음으로 행하지 못해서 그렇다. 믿음은 여행과 같다. 믿으면,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의 것이지만, 믿지 못하니 자신들의 소유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마가복음 11장 22절에서도 주님은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져지라고 명령하고,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다. 명령하고,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는 3단계를 거쳐야한다. 명령과 믿음은 기도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마음에 생기는 의심은 현실의 파도로 서서히 약해진다. 믿음은 현실에 부딪힌다. 믿고 기도한 것이 현실의 파도에서 의심이 생기지 않고 계속 믿는다면, 믿음대로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으면서, 가나안 땅의 현실을 보고서 믿음이 파선됐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보고서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만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갈렙에 대해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믿음으로 봤던 것이다. 하나님의 믿음으로 행해야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신다.
왜!! 이단들이 잘될까!! 그것을 이상케 여기지 말라!! 본래 한반도는 각종 종교들의 소굴이었고, 불교와 유교와 동학의 이상세계였다. 언제, 한반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물결친 적이 있었던가? 각종 잡풀이 무성한 종교의 우상국가로 살았던 한반도에 기독교가 이렇게 활발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 이단들을 원망할 것도 없다. 그들이 나타남은 기독교의 향락과 태만을 깨우기 위함이다. 주님은 이단의 닭들을 보내서, “꼬끼오”를 외치게 하니, 기독교가 십자가의 진리를 다시 움켜잡고, 구원이 난파되지 않도록 유념하게 되었다.
구원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그리스도이다. 이단들의 도움으로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진리를 다시 깨우치고, 잠시 멀어졌던 성경의 진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일침”을 얻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이단의 엉겅퀴와 가시덤불은 성령의 불로 태워 없앨 것이다. 먼저, 한국교회부터 내부의 맘몬신과 권력신의 우상을 깨뜨리고, 십자가의 진리로 새롭게 태어날지라. 성령이 교회에 없다면, ‘이단이나 교회나 사찰’이나 피차일반이다. 예수님께서 헤롯성전을 나와서 성전멸망을 예언하고, 이후 감람산에서 말씀의 망치로 헤롯성전을 질그릇처럼 깨뜨린 “예언적 묵시”를 기억할지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2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