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9~11]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행실을 깨끗하게 할까? 과일은 무엇으로, 몸은 무엇으로 씻는가? 빨래는 하이타이로 빨고, 얼굴은 세수비누로 씻는데, 행실은 무엇으로 씻을까? 왜 행실을 씻어야할까? 시편119에 언급된 ‘행실’은 어떤 행실일까? 행실(行實)은 행함의 열매다. 열매는 곧 사람나무에 열린 행위다. 사람은 스스로 도덕적 선한 행실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모든 열매가 “죄악”이다. 죄의 열매를 열 뿐이다. 왜냐면,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의 나무”라서 그렇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의 열매를 열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을 안다”라고 유대인들은 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이지, 근본의 하나님, 태초의 하나님은 아니다. 모세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도 ‘등’만 보여주는 수준이고, 감히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했다. 율법은 곧 하나님의 그림자요, 뒷모습이다. 하나님의 얼굴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으로서 완전한 형체로 사람의 심령에 임재한다. 사람이 마음의 죄악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면,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이 ‘악’이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고, 배나무는 배를 연다. 인간은 죄의 나무이니, 종자를 개량하지 않는다면, 구제불능이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인간나무의 종자를 완전히 개량해서, ‘죄의 나무’가 ‘의의 나무’로 바뀐다. 사람이 의로운 나무가 되었으니, 이제 의의 열매를 열 것이다.
시편119:9에서 말하듯,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다”고 고백한다. 주의 말씀을 행위로 실천해도, 그것은 죄악이다. 인간의 마음이 더러워서 그렇다. 마음속에 십자가의 나뭇가지가 던져질 때, 마음은 해독된다. 이것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 십자가의 나무가 마음속에 접붙임을 당할 때, 그때 고염나무는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접붙임의 극한 비밀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죄인된 우리에게 십자가의 의로운 나무가 접붙임이 되면서, 우리가 비로소 ‘의의 열매’를 열 수 있다. 의로운 열매를 1개만 열어도, ‘의의 나무’이니, 우리가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그것이 ‘의의 열매’가 되었으니, 그 믿음이 “의의 사람”으로 칭함을 받게 된다. 열매가 그 나무의 이름을 결정짓는다. 우리의 입술에서 의로운 열매가 열렸으니, 누가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하리요!!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라고 했다. 범죄의 근본은 “주께” 행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뱀의 말을 들은 그것이 “범죄”의 발단이었다. 뱀의 말을 듣는 그 지혜로움이 “죄악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주께 범죄하지 않으려면, 뱀의 말을 듣지 말아야한다. “나는 분별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경고하노니, “어리석도다! 그것이 교만이다! 사람은 뱀의 말을 분별할 수가 없다! 듣다가 그 사상에 물들면서, 뱀의 후예가 되고 만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말씀을 각자 마음에 두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야한다. 정보홍수 시대에, 인생의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으리요? 성경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자주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서, 찬송하면서, 영혼을 새롭게 하고, 가능하면 세상 말을 듣지 않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