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로서 두 따옴표를 사랑한다. 많은 문장기호 중에서, 두 따옴표를 정말로 좋아한다. “ ” 하늘에 붕 떠있는 이 놀라운 기호는 “두 손”처럼 보여서 좋다. 눈썹처럼 생겼고, 항상 단어와 문장을 감싸면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래서, 나는 두 따옴표가 매우, 매우, 매우 좋다. 두 따옴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작과 끝’이다.
나는 2020년 1월 1일 AM12:00에 교회에 있었다. 교회 성도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주님과 함께 시작을 맞이했다. 성령께서 ‘나의 2020년’ 전체를 거룩하게 하셨으니, 2020년 12월 31일까지 성령충만할 것이다. 시작을 성령께서 선점하셨으니, 끝까지 성령이 함께 할 것이다.
두 따옴표는 곧 성령충만이다.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완성한다. 2020년 12월 31일 PM10:00에 나는 벌써 교회에 있다. 성령으로 2020년을 닫고, 성령으로 2021년의 문을 열 것이다. 시작과 끝이다. 1년의 시작과 끝을 성령과 함께 행해야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번 1.1.새벽이다. 1년의 첫 시작, 하루의 첫 시작, 일의 첫 시작, 모든 것들의 첫 시작은 성령이다. 두 따옴표로 시작해서, 두 따옴표로 끝난다.
두 따옴표에 집착하는 이유는 직업특성이다. 언론인은 두 따옴표와 함께 살아간다. 작가는 한 따옴표를 자주 쓴다. 생각은 한 따옴표요, 말은 두 따옴표다. 나는 작가이고, 언론인이라서, 생각과 말을 모두 사용하는데, 언론인으로 활동할 때는 두 따옴표가 ‘생명’이다. 한 따옴표는 강조표시에만 쓴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 그것을 정확히 받아써서, “00000”라며 “00000”라고 했다. 이것에만 14년 넘게 신경쓰다보니, 두 따옴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 따옴표가 확실히 성령의 두 손이요, 성령충만의 시작과 끝이요, 성령의 보호하심이라고 내 마음에 강하게 왔다. 예수님은 성령충만에 이끌려서 유대광야로 가셨고, 예수님은 성령충만에 이끌려서 십자가를 영접했고, 예수님은 성령충만으로 영혼이 운명하시고 무덤에 묻히셨고, 예수님은 성령충만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부활의 예수님은 성령충만으로 ‘성령’이 되셨다. 나는 예수님의 성령이 오늘도 살아계심을 믿는다. 성경 어디에도 “성령이 죽었다”는 구절을 찾지 못했다. “부활의 예수님이 죽었다”는 구절도 못 찾았다. 곳곳에 “부활의 예수가 살아있다”는 문장을 만났다. 그래서, 나는 성경적으로 예수님이 ‘진리의 성령’으로 살아계심을 믿는다.
*** 국문법에서 “”을 큰 따옴표라고 하고, ‘’은 작은 따옴표라고 한다.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가 맞는 용어다. 두 따옴표와 한 따옴표는 ‘나의 용어’다. 흔히, “땡땡”으로도 불린다. 성경적 표현은 “이르시되”이다. 숫자로는 6699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