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해부터 내 말을 유심히 살펴본다. 내가 무슨 말을 나열하는지, 내가 듣는 버릇이 생겼다. 또한, 사람들의 단어와 문장에도 관심을 쏟는다. 내가 어떤 지인과 식사를 하면서, 발견한 새로운 습관이다. 언론인으로서 그러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새해에 더욱 유념하게 되었고, 내가 나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
내 조카가 한번은 친구 4명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삼촌! 떡복이 사줘!”라고 했다. 나는 떡복이를 사줬다. 조카만 사주지 않고, 조카를 보고 모든 친구들에게 사줬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남았다. 떡복이를 사달라고 했는데, 나는 넘치도록 ‘오뎅까지’, ‘순대까지’ 사줬다. 이것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넘치도록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다. 아들이 이 땅에 있으니,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부모가 사랑을 쏟듯, 하나님은 이 땅에 더 큰 애정을 쏟고, 아들을 통해 새로운 구원역사를 펼치셨다.
1년동안 나는 밤과 낮의 혼동속에 공허했다. 올해, 성령을 받고, 성령께서 새로운 생각을 주셨다. 십자가는 나의 축복이니, 십자가로서 행하는 축복을 주셨다. 내 이름을 십자가에 “꽝꽝꽝” 박았더니, 그때 예수님의 이름이 내게 임했다. 모든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다. 각 성도의 머리도 주님이다. 머리는 곧 ‘얼굴’이니, 모든 성도는 제2의 예수다. 교회는 예수님들의 모임이며, 공동체이다. 성도가 의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는 내 마음을 괴롭히는 몇몇 이름을 놓고, 십자가의 축복을 간구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다. 그런 심정으로 행했더니, 내 마음에서 두려움이 물러갔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A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정확히 말했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그러한데, 그대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대는 예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설령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창조주의 작품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생각날 때 마음으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십자가의 축복을 빌어줍니다. 정죄하지 않고, 십자가로서 용서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