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 올까?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의 탁월한 믿음이 공개된다. 모세와 바로에 대한 ‘역전현상’이다. 우리는 “모세는 보냄을 받은 자이고, 바로는 하나님을 대적한 자”로 알고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증언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성경이 근본의 진리를 말한다. 성경은 증언하길, 바로 왕은 하나님의 이름이 온땅에 전파되기 위해 세움을 받은 자이다. 바울이 증언했고, 모세도 똑같이 기록했다.
[롬9: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출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출애굽기 9:16에서 “나”는 하나님이고, “너”는 바로왕이다. 하나님께서 바로왕을 세웠고, 완악한 고집으로 굳혔으니,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왕에게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최종 공격수요, 바로왕은 하나님의 공격을 막는 골키퍼다. 축구경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구원의 능력’이다. ‘10대 재앙의 축구경기’를 하는 이유는 완악한 바로왕을 꺽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골리앗을 세운 목적은 다윗을 보내서, 골리앗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다윗도, 골리앗도 모두 하나님께서 보냈고, 세운 인물들이다. 하나님은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행하신다.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황금신상도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돌맹이 하나가 날아가서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 돌맹이는 다윗이 던진 것과 같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백석’(白石)이다. 곧, 반석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고자 하는 백성을 구원하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며, 세상에서 꺼낼 자를 꺼내신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은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림이 당해진다. 어쩔 수가 없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은 바로왕을 ‘강퍅한 고집’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하나님의 능력을 ‘우상’을 통해 드러내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인 ‘저주의 십자가’를 세워서, 구원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행하시면, 모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엘리야의 손으로 하늘의 물을 닫고, 다윗의 물매돌로 장군 골리앗도 쓰러뜨리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다. 저녁으로 아침을 만드신다.
바로왕의 강퍅함처럼 악한 누군가를 향해 비판할 것도 없다. 악한 자도 하나님께서 악한 때를 위해 ‘세움’을 받았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티토 장군은 헤롯성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야바 대제사장과 빌라도와 헤롯 안티파스는 주님을 십자가에 넘기기 위해서 ‘세움’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악함도 ‘악한 때’를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구원’을 창조하신다. 그래서, 전능자 하나님이다.
바로왕의 고집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한 마음을 꺽고,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을 살게 했다. 그들 대다수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의심과 불신과 고집을 통해서 ‘약속의 책’ 모세 5경을 낳았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 ‘40년의 광야생활’이 없었다면, 모세 5경도 없었을 것이다. 광야생활 40년은 모세5경 집필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