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은 분명 지혜로운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혜로운 말로서 도덕적 견책과 경영마인드를 얻게 하는 것으로 잠언을 제한하면, 구원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 잠언은 구원의 능력이며, 마비되거나 죽은 심령을 깨우는 일침을 가한다. 뱀의 말도 ‘잠언’으로 전달된다. 그들의 말은 ‘전갈의 침’으로 들으면 따끔하면서, 세상이 보인다. 어떤 것에 대해 눈을 열어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잠언을 받아야, 영생과 평안이 있다.
“내 아들아”라고, 잠언 4:20에 나온다. ‘내’는 ‘나의’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공식적으로 하셨던 첫 음성은 다음과 같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마3:17) 마귀는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면서 각종 자격시험을 본다. 뱀말을 듣고 합격하면, 뱀의 자격시험에 합격해서, 뱀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라고 부를 때,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뱀을 발로 짓밟는다.
하나님은 날마다 말씀하시고, 겟세마네에서도 말씀하셨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였고, 아들의 의향, 아들의 뜻은 ‘잔의 비켜남’이었다. 두 개의 뜻이 명확히 분리됐고, 이때 주님은 기도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일체시켰다. 기도는 이것이다. 서로 다른 두 생각이 나뉘고,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일체해서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사람들은 창세기 3장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타락사건을 모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뱀의 유혹 사건에서 옆에 계셨다. 뱀과 하와 사이에 정확히 존재했다. 창세기 3:3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라고 하와가 말했다. 그때,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 계셨고, 말씀이 말씀하면서 하와에게 말씀이 생각나게 한 것이다. 그때, 뱀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니,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서 마음이 마귀에게 기울여진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와처럼 마귀의 미혹을 쉽게 받는다. 수시로 제정신을 차려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암송하면서, 뱀의 말을 들어보면, “끝”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하와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어야 한다.
잠언4:20~22은 내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지켰다.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된다”고 했는데, 주님은 저주의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생명나무’의 길로 나아가셨고, 육체가 살아나심으로 ‘육체의 건강’이 되셨다.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
PS. 하루를 살면, 나는 3~4구절의 성경구절을 암송한다. 간단, 명료하게 살기로 작정했다. 주일말씀 본문을 암송하는 것은 내게 큰 유익을 준다. 말씀은 생명이다. 생명은 곧 살아있는 명령으로, 심장처럼 내게 있어야한다. 심장은 맥박으로 뛴다. 그렇게 말씀이 마음속에서 꿈틀꿈틀 뛰어야한다. 암송외에는 방법이 없다. 입술로 날마다 읇조리기!!! 오늘은 잠언4:20~24인데, 20~22과 23~24까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외우고 있다. 실제로 해보니, 100번 정도 계속 읽고 암송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면, 저녁 즈음 모두 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