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수가 화살을 쏠 그때, 무엇이 보이는가? 오직 과녁판이다. 하늘에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청중은 주변에 있고, 들판의 풀들이 즐비해도, 궁수는 과녁만 보인다. 지금, 오늘, 무엇이 보이는가?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가 보인다면, 구원은 확정된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중심점이요, 바라봐야할 과녁판이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나, 신앙서적을 읽는 것이나, 밥을 먹는 것이나 모두 동일하다. 먹으면, 소화과정을 거치고, 영양분만 흡수할 따름이다.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감동이 마음에 스민다. 신앙서적도 그렇고, 드라마도 동일하다. 일단, 새로운 책은 10p정도 탐독하고,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도 밑줄을 치고, 기도하고, 성령께 그 내용을 기도로 알리면, 새롭게 소화된다.
오늘은 이사야서 성경주해를 읽었다. 이렇게 딱딱한 내용을 10p 가량 읽었더니, 머리가 둔중해진다. 치악산을 오른 듯, 마음은 고달파진다. 산 정상은 멀고, 문장은 비탈처럼 미끄럽고, 단어는 돌부리로 나를 괴롭힌다. 정해진 분량을 읽고, 눈을 감고, 성령께 기도하니, “핵심만 파악하라”고 하셨다. 나머지는 불순물이다. 이사야가 혼돈의 시대에 말했다는 것!! 그것은 실제 사건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사야의 입술에 둬서, 이사야는 그 말씀을 왕앞에서 전했다는 것!! 나는 내 삶속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스스로 분향하려가다 문둥병으로 세게 얻어 맞고 소천한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어느날 소명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해와 날이 정확하다. 오늘은 2020년 1월 14일이다. 오늘, 지금, 주님은 무엇을 하실까? 이사야는 말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골리앗이 있는 것을 알고서 다윗이 전쟁터에 간 것이 아니다. 다윗은 전혀 몰랐다. 가서 보니, 골리앗이 보였다. 예수님은 유대광야에 마귀가 있는줄 전혀 몰랐다. 어쩌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때도 성령의 소리가 있을줄 전혀 몰랐다. 예수님은 몰랐고, 성령께서 인도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했더니, 그곳에 마귀가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마귀를 대적해 물리쳤고, 다윗도 골리앗을 물리쳤다. 바벨탑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땅에 내려와 그것을 흩었다. 앗수르, 바벨론, 헬라제국, 로마제국은 모두 바벨탑의 후예로서 세상의 제국들이다. 하나님께서 흩으신다. 바벨의 제국앞에 하나님의 소리를 전달하는 소명을 받고 이사야가 나타났다.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의 구원은 인간에서 비롯되는가? 위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라!!
‘디아스포라’의 놀라운 신비는 인생을 겸비하게 한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디아스포라’ 족속은 레위지파다. 그들은 땅을 유업을 받지 못해서 각 지파속에 흩어져서 살았다. 흩어짐의 사명은 ‘화목과 단결’의 소명이 주어졌다. 칼을 가졌던 레위의 후손에게 하나님은 ‘협력의 사랑’을 소명으로 주셨다. 레위지파의 소명은 이스라엘의 소명이 되었고, 참 이스라엘로 새롭게 부름을 받은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와 교회는 열국속으로 흩어짐을 당해 소금과 빛의 소명을 감당한다. 곧, 레위지파가 맡았던 제사장 사명이다. 박해받은 자로서 선지자들이 그 소명을 감당했고, 자본주의로 물든 세상에서 누가 소금으로 진리를 수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