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아모스의 아들이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를 본 것이다. 계시는 곧 하나님의 보여줌이다. 사도 요한도 “위로 올라오라”해서 올라갔더니 새로운 계시를 보았다. 이사야 6장이 본래 첫 시작인데, 편집과정에서 1장 1절~3절이 서두에 놓였다. 상당히 불편한 진실을 이사야는 선언한다. 이사야의 말로 선언되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창세기 1:1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조한 피조물의 세계를 모두 호출하면서, 하나님은 특히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장이 전교생을 불러 놓고, 특정 학생에 대해 ‘우등상’을 주거나, ‘훈계’를 하거나, 그렇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 말씀은 나의 말씀이다. 믿는 성도는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아야한다. 십자가는 ‘나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짊어지셨다. 그 대속사건을 ‘과거사건’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주님은 생명을 내어주고, 우리를 살리셨다. 그 댓가는 지독했다. 부활의 기쁨은 십자가의 피흘림을 전제한다. 어찌 6.25.를 잊겠으며, 어찌 일본 식민지 치하를 잊겠으며, 어찌 창세기 3장 마귀의 사기사건을 잊겠는가!! 말씀을 살짝 변경해서 사람을 속여서, 말씀을 떠나서 세상에 속해 살게 한 마귀의 유혹은 ‘영혼’의 독버섯이다.
지상낙원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이 과연 지상낙원인가? 지상천국이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과연 지상천국인가? 공산당만 그들의 지상낙원이요, 이단의 지도부만 그들의 지상천국이다. 주님은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이 땅에 죄를 용서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것을 인정한다. 그것만이 천국에 가는 길인데, 우리 인생의 최종 목표를 망각하는 자들은 미련스럽다. 나의 30년은 30분처럼 기억되니, 앞으로 30년도 30분처럼 지날 것이다. 하나님의 뜻길을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