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수신인은 로마서 16장에 있다. 너무 많아서, 뒤로 뺀 것 같다. 30명의 동역자들!! 로마제국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때, 바울의 동역자 30명은 로마제국 속으로 기습특공했다. 예수님께서 유대광야, 마귀의 소굴로 쳐들어가듯, 헤롯성전 이념의 소굴로 쳐들아가듯, 바울은 동역자들과 함께 로마제국에 입성했다. 빛이 어둠속에 들어갔음이여!!
바울은 주님을 많이 닮았다. 베드로가 주님을 버렸을 때, 배신했을 때, 주님은 믿음으로 기도해주고,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셨다. 정죄함이 없었다. 부활하시고, “배신죄”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느냐”고 긍정하셨다. 주님의 언어는 사랑으로 살아있다.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을 끝까지 본 백부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했다. 가능하면, 언어에서 부드러움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마음에 박힌 큰 못이 있다. 내가 사랑했던 어떤 사람이 대못을 박았고, 그 말이 잘 빠지지 않는다. 주님께 서럽게 울면서 ‘말의 못’을 빼달라고 기도했고, 지금도 기도한다. 비판의 직업에 종사한 언론인으로 살다보니, 내 형벌일까? 스스로 위안하지만,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일어선다.
그 누구든지, 그 존엄성이 있으니, 골방에서 기도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좋게 기도한다. 내 눈에 보기에 어떠하면, 그것도 ‘축복’으로 바꿔서 기도해준다. 내 눈에 보기에 누군가의 단점이 보이면, 성령께서 그렇게 깨우쳐 주셨다고 믿고, “성령님, 그 부분을 채워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내게도 내가 빈 그 축복이 함께 있게 해주세요”라고 간구한다. 그러면, 항상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알았다”는 응답이 온다.
뜨겁게 기도하면, 반드시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내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들의 이름이 명확하게 떠오른다. 마치, 폭우가 쏟아지면 수면위로 떠오르는 오물처럼, 나와 감정이 쌓인 이름이 마음의 수면위로 얼굴을 내민다. 불편한 그 이름들위에 사랑을 담아서 축복해준다. 내가 받은 모든 축복을 빌어주고, 빌어주고, 성령의 은혜를 진실로 간구해준다.
바울이 했던 일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일까? 내게 묻는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주님이 보이게, 보이는 자신은 보이지 않게, 중매장이로 숨겨진 것이다. 그가 중매장이가 됨으로 초대교회는 신랑이신 주님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세례요한이 못했던 그 사명을 사도 바울이 확실하게 해냈으니, 이 시대까지 그의 삶은 귀감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