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확실히 하나님의 얼굴이다. 유대교가 기다렸던 ‘약속의 그리스도’다. 아멘!! 성경적으로 그는 우주의 상속자다. 지구를 점령한 모든 악령을 물리쳤고, 옛뱀의 머리통을 짓뭉갰다. 오!! 그는 진실로 초월자 슈퍼맨이다.
그런데, 나는 미련스럽게 예수님과 십자가를 버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버렸다. 예수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또한 버렸다. 30년간 나는 그 사상을 고집했다. 동굴속에 갇힌 자는 누군가 꺼내줄 때까지 동굴이 동굴인줄 모른다. 그 동굴은 계몽이 필요한 비진리의 무지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한 시대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계급주의와 이단종교가 갈수록 지능을 높여간다. 경찰청에 보면, 지능범죄수사대가 있다. 범죄중에 지능범이 있는데, 옛뱀이 그렇다. 그들은 자주 가면을 쓴다. 약한 생명, 어린 생명을 사냥한다. 나는 30년전에 당했다. 주님의 허락안에서 허용된 어둠의 공격이었을 것이다. 모세도 이집트의 궁궐에서 그들의 문명을 익혔으니, 나는 이단을 알기에, 이단에 대해 말한다. 또한 자본주의를 아는 자는 자본주의를 말한다. 권력의 중독을 아는 자는 권력을 말한다. 이단도, 권력도, 돈도, 모두 어둠이 즐겨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단과 권력과 돈과 여자와 명예를 멀리하고 살아야하는가? 그렇게 살면 천국인가? 그 또한 지옥이다. 주님은 그것들을 멀리하라고 하지 않았다. 주님은 마귀가 있는 유대광야로 쳐들어갔고, 바울은 30명의 특공대를 조직해서 로마제국 안에 깊숙이 침투해서 ‘사랑의 복음’을 전파했다.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사회는 지금보다 더욱 지능적으로 복음이 훼손될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아는 자가 계속 복음을 읽고 외쳐야한다.
유럽, 미국 등등 기독교는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령, 우리나라에 불교가 있듯이, 유럽에는 기독교가 있다. 나는 불교를 믿지 않지만, 불교문화인 절을 ‘역사’로서 존중한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현재 그 정도로 위축되었다. 영국의 대형교회가 술집으로, 이슬람 사원으로 넘어간 것은 뉴스로 널리 알려졌다. 애석한 일이다. 부활의 예수님이 기대를 걸만한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바로 한국이다. 그래서 이단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기쁜 소식이다. 곧, 예수님의 나타남이고, 그의 말씀이며, 그의 행하심이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 자세히 적혀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전기문이 아니다. 구약정경의 마침표요, 인생의 구원이 들어있는 ‘상속문서’다. 구약이 마귀와 하나님의 영적 전쟁이라면, 복음서는 하나님의 확정 판결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복음서에 들어있다. 그것을 명확히 알아야만, 어둠의 궤변을 이길 수 있다. 날마다 복음서 읽기에 태만하지 말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잠4:20~21)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그의 말씀이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마음속에 지키라고. 복음서는 날마다 가까이 해야하며, 날마다 복음서 1장 읽기를 한다면, 또는 마태복음이든, 마가복음이든, 누가복음이든, 요한복음이든, 복음서 1개라도 날마다 1장씩 1년만 읽어도, 복음서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음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때, 그는 붓을 들어 주님을 증거할 수 있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압축해서, 마가복음을 썼다.
마태는 마가복음을 읽고, 더 세련되게 마태복음을 썼다.
누가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을 함께 읽고 이방인들을 위해 편집해서 누가복음을 썼다.
요한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모두 읽고 새로운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썼다.
우리는 4개 복음서를 읽고, 주님을 증거하는 각자의 복음서를 써야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명이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 이사야 40장
내게 복음은 ‘복음서’를 읽고 마음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감동을 담대히 외치는 ‘나의 소리’다.
– 복음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박사) p8~13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