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면, 나는 일주일 동안 외운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암송한다. 잠언 4:20~24이다. 외워져 있으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억나지 않은 단어가 있으면, 그 또한 감사하다. 기억에서 잃은 단어 하나를 다시 찾았음이여!! 오늘은 모두 암송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는 성경구절이 내게 다가왔다. 악(惡)은 亞心의 합성이다. 亞는 곱사등이 2명이 서로 합쳐진 글자로서, ‘굽고 굽다’는 뜻이다. 惡은 삐딱한 마음이다. 마음이 굽어지면, 행동도 굽어진다. 진리에서 벗어난 마음이 곧 비진리다. 진리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진실로 ‘죄인’을 영접했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탕자’를 영접했고,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어떤 귀부인은 ‘한 드라크마’를 마침내 찾아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 버려진 거지 나사로를 찾아서 품에 안았다. 불의한 청지기에게 은혜를 받은 마을 주민들은 그 청지기가 해고되면, 자기 집으로 영접할 것이다. 주님은 나를 영접하셨고, 영접하시며, 영접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주님을 만나, 주님의 의로움으로 믿음이 굳건해져 신앙의 도덕률을 높인다고 해도, 그러한 도덕적 행위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다. 흙에서 태어난 사람은, 나는, 흙의 속성이 영원하다. 죄로 가득한 인생이다. 인생이 의로움으로 주님을 맞지 않고, 주님께서 죄인을 영접하신 그 구원의 신비가 놀랍다.
이집트에 속해, 그 제국을 위해 충성한 의로움이 하나님께는 불의함이 되었으니, 그 불의함 때문에 주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으니, 그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주의 사랑이다. 죄 때문에 주께서 오셨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주님은 그러하실 것이다.
살다보면, 금새 인간은 참새처럼 기억을 망각한다. 참새와 붕어는 단기기억 상실증이 있다. 붕어는 물었던 미끼를 또 물고, 참새는 속았던 허수아비에게 또 속는다. 사람도 그렇다. 뻔히 보이는 세상의 유혹앞에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가 날마다 필요한 것이다. 왜,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이 넘어질까?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잡이 않아서일 것이다. 믿음생활을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날마다, 회개하고, 회개해야한다. 그래야 내면이 서서히 정화되면서, 주님의 인격과 향기를 닮아가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미국 영주권을 얻었다고 해도, 미국인처럼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죄인이 의인으로 칭해졌으니, 그것은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죄인된 속성을 날마다 깨달으면서 살아야한다. 나는 “죄인된 나”를 “의인”으로 품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오늘도 “죄인됨”을 고백함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신비다. 내가 나의 의로움을 주께 내세우면, 그것은 구부러진 말에 불과하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