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에 전도계보가 나온다. 세례요한의 말 한마디에 그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갔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안드레가 베드로를, 요한이 야고보를 전도했다. 가족전도다. 이어 안드레가 빌립을 전도했다. 친구전도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전도했다. 이들이 요단강 5형제다. 첫 시작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지만,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요한은 예수님을 따랐다. (이후, 갈릴리에서 요한은 야고보를 전도했다.)
인생이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사는 날까지 전도해야겠다. 전도해야지, 예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 십자가를 진 것은 ‘죽음’과 맞바꾼 것이다. 그 십자가의 효용가치를 최대로 높이는 것은 생명을 전도하는 것 외에 없다. 십자가는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믿고 받아드리는 자들에게만 효용이 있다. 그래서 전해야한다. 십자가를 전혀 모르고 죽은 자는 얼마나 억울한가? 몰라서 믿지 못한 것과 알아도 믿지 않는 것은 결과는 같지만, 몰라서 믿지 못한 것은 ‘전하지 않은 자’의 책임이 있다. 그래서 전해야한다. 전하면, 그때부터 성령께서 책임진다.
어제, 금요기도회 말씀을 듣고, 집에 오면서 전화로 전도했다. 주일날 예배에 오기로 했다. 2주동안 꾸준히 만나서 설득하고, 기회를 찾았는데, 주일날 오겠다고 약속했다. 한번 교회의 문을 열면, 달나라에 착륙한 것과 같다. 교회에 발을 디디면, 이후에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발을 디딘다. 사람은 교회에 오기까지, 성령은 사람의 심령에 들어가기까지 말씀은 전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면, 성령께서 사람의 심령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고, 성령의 자유다. 사람이 어찌 하지 못한다. 말씀을 전하면, 이후는 사람이 어찌 못한다.
믿고, 복음을 전했더니, 성령께서 말의 권능을 주셨다. 이미 주신 권능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복음을 전하면서 언변이 달라졌고, 성경읽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매순간, 주어진 여건에 따라 행해야겠다. 지난 12월 25일 예수님 생일 때, 성경봉독하고, 1.1.새벽에 기도하고, 이제 나의 생일 때 기도를 하고, 주님은 ‘생명’을 원하심을 확실히 깨닫는다. 아멘!! 전도할 생명, 멀리 있지 않다.
예수님은 사촌형, 세례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 두명의 생명을 얻었다. 그 두명이 제자 공동체의 기초석이 되었다. 인생의 길을 누가 알랴!! 40일 금식기도를 하시면서 힘든 노정을 겪듯이, 인생의 삶이 고단하여도 모두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다. 생명전도를 위함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주님은 부활하고, 역시 제자들을 찾아서 갈릴리로 가셨다. 살아서도 전도, 부활하시고도 전도다. 지금도 주님은 전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