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빌라도에게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고 했다. 짐승의 권력을 대표하는 빌라도에게 ‘명확한 진리’를 선포한 것이다. 빌라도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못 들으니,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듣는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 “아멘”한다. 이단교주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진리에 속하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주장하나, 예수님을 부인한다. 그래서, 그들이 전하는 모든 말은 비진리요, 옛뱀의 교설이다.
18:2에서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고 했다. 이는 에덴동산을 연상하게 한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그곳에 두셨다. 신약시대는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과 함께 에덴동산에 들어가셨다. 주님을 믿는 자는 가는 곳이 에덴동산이다. 유다도 그곳을 알았다. 그처럼 옛뱀은 우리가 가는 곳을 방해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십자가는 뱀의 머리통을 짓뭉갠다. 성령으로 행하면 뱀의 머리통이 둘로 쪼개진다. 본인이 스스로 행하면 홍해가 갈라지지 않는다. 성령과 함께 해야만 홍해가 갈라진다. 성령없이 행하면 절대로 안된다. 믿음은 ‘성령’을 통해서다.
유다는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무기를 가지고 왔다. 기도하고, 성령으로 행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유다를 향해 칼을 뽑았다. 말고의 귀를 잘랐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했던 그 말씀을 가룟유다도 들었을 것이다. 유다는 칼을 칼집에 꽂지 않았고, 베드로는 칼을 칼집에 꽂았다.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점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따랐고, 3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언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현됐다.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 이후에 주님께 순복하고, 성령을 받고 완벽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무엇을 의지하는가? 칼인가? 아랫사람인가? 힘인가? 제도인가? 권력인가? 돈인가? 진리에 속한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주님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행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