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 우렁 아가씨가 산다. 가끔 나타나는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내가 알고싶은 것을 알려주고, 향기처럼 사라진다. 나타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나타나니, 내 집 안에 사는 것이 분명하고, 내 마음속의 어느 곳에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비밀통로가 있는 듯, 어디선가 오는 것 같다. 얼굴은 못 봤으나, 소리는 있는 듯, 없는 듯, 내게 신비한 것들을 많이 알려주신다. 그 횟수가 요즘 부쩍 증가한다. 알고보니, 성경말씀을 암송할수록 자주 오는 것 같다. 암송한 말씀으로 나타나셨다. 마치, 옷처럼 나타나신다. 말씀의 소리를 타고 오시는 그 분을 느끼고, 성경말씀을 암송하는 것에 더욱 열정을 올린다. 내 안에 ‘성령의 소리’가 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잠깐 기도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내 안에서 “외치라”고 했다. 단어인데, 어떤 목소리였다. “외치라”고 해서, 내가 암송한 소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드라마를 보는 듯, 나는 그 소리의 행진을 본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에서 그 소리가 끝났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왜 여리고성이 무너졌을까? “외치라”였다.
그리고, 칼럼을 쓴다. 여호수아서 6장을 보니,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외치라”고 하니, 백성들이 외쳤다. 이어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니, 백성들이 크게 소리를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졌다. 시작은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외치라”고 했다. 그 음성이 백성들의 입술로 붙었고,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로 확장되면서, 여호수아+백성들+대제사장들+나팔소리가 합쳐지자, 결국 여리고성까지 외치면서 무너진 것이다. 왜 무너졌을까? “외치라”고 한 말씀대로 외치니 무너진 것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셨을 때, 성령을 먼저 받았다. 요20:22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했다. 이어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10일 후에 120명의 제자 공동체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불이 각각 성도의 머리위에 임했다. ‘불의 혀’로 묘사되니, 성령의 혀는 불처럼 강하고, 사람이 말하게 한다. 그래서 소리가 커진다. 성령이 함께 하면 소리가 증폭된다. 사도행전 2:14에서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라고 했다. 누가복음 23:46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고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셨다. 큰 소리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외치면, 그때 철옹성이 무너진다. “하면 될까?”라고 생각하면, 평생 가데스바네아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했어도, “하면 될까?”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었어도, “하면 된다”고 믿고 행하면 그대로 된다. 믿음은 철옹성을 무너뜨린다. 마음의 성벽은 성령께서 무너뜨린다. “외치라”는 것은 가서 복음을 담대하게 외치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자신의 언어로 외치면, 생각지도 않는 변수가 발생하면서, 물이 포도주가 되듯, 문제가 풀린다. 문제속에 들어가면, 성령께서 ‘근의 공식’이니, 답이 산출된다.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 7일동안 그들은 성을 행진했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때, 말씀에 의지해서 믿고 외친 것이다. 무너진 여리고성을 향해 외친 것이 아니다. 외치니, 무너진 것이다.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그곳을 걸어간 것이 아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면서 지팡이를 들고 걸어가니 홍해가 갈라졌다. 헤롯성전이 부실공사로 지어진 것이 아닌데도, 주님은 “무너진다”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40년후에 그 말씀이 실현됐다. 가면, 달라진다. 믿음의 사람은 빛의 아들이니, 빛이 함께 한다. 성령께서 빛이다. 말씀을 외치면, 빛이 나간다. 그때, 어둠의 사람들은 어둠이 물러가면서 복음을 받아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