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또 다른 보혜사”가 온다고 주님이 약속했다. 같지만, 다른,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인데, ‘같음’은 예수님이고, ‘다름’은 형체의 본체다. 성육신에서 본체의 형상을 입고 우리가운데 다시 오시는 분이 ‘성령’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성령님이다. 그 성령님은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신다.
오늘 나는 ‘또 다른 성경’을 샀다. 기존에는 ‘한문성경’을 읽고 있는데, 개역개정의 한문성경이다. 너무 자주 읽어서, 많이 낡아졌다. 10년 넘게 보관만 하던 성경이 1년만에 겉이 낡아져서 무척 기쁘다. 오늘은 ‘한영성경’을 구입했다. 둘은 같지만, 다르다. 본래 모든 번역성경은 ‘헬라어 원문 성경’에 대해 ‘또 다른 성경’이다.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 그것은 분명 ‘또 다른 성경’으로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과 같은 맥락이다. 번역은 핵심에 있어서 ‘원문’을 벗어나면 안된다. 헬라어 원본-번역성경-성경해석의 3단계로 성경이 사람에게 들어온다. 어떤 특정종교는 “십자가”를 예수님과 정반대로 해석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대속의 제사”로서 해석하고, 세례요한도 “어린양 예수”로 증거했다.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오셨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번역성경에서 ‘단어의 작은 의미’는 용납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가 바뀌면, 그 번역성경은 “틀린 번역”에 해당된다. 헬라어 원문에 대해 ‘소리들의 음’은 모든 번역성경이 다르다. 그러나, ‘뜻’은 같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같은 성경’이다. 이와같이 교회마다 제도와 프로그램이 약간씩 다르지만, 예수님과 십자가로서 그 의미와 뜻이 같다면, 모두 하나의 교회속에 속한다. 언어는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영어로 암기하고, 암송하면, 언어에 감각이 불붙을 것이다. 아멘!!
오늘은 빌립보서 2:12~13을 한글과 영어로 모두 암송했다. 하니까 되더라. 안하면 30년 동안 성경 1줄을 암송하지 못하고, 행하면 하루만에 산상수훈의 팔복장을 암송한다. 한번 외우면, 구구단처럼 평생 써먹는다. 성경암송, 구구단과 같다.
It’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in order to fulfill his good purpose.
“in you”는 ‘너희 속에서’이다. 떡과 포도주를 마시면 우리 속에 주님이 들어오신다. 주님께서 우리의 뇌속에 들어오셔서, 심장으로 행하심으로, 감정을 흥분시키면서, 그것을 행하게 하신다. ‘to will and to act’는 확실히, ’you‘에 걸린다. 우리가 기꺼이 뭔가를 하고 싶고, 행하는 것이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밥을 먹고 싶은 의욕을 갖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공부하고,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고 싶다는 의지를 갖는 것은 모두 창조주께서 이 땅에 내려와서 지금 행하는 일이다. 창조주는 사람속에서 창조주로 행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