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가자”는 소리가 갑자기 일어났다. 잠자는 내게서 소리가 일어났다. 영화속 장면이 생각나면서 예수님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마음으로 “어디로 가요?”라고 하니, “성경속으로”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얼른 일어났다. 이불을 정리하고, 베개를 반듯하게 올려놨다. 그때, 주님께서 무덤에서 일어난 모습이 떠올랐다. 세마포를 이불처럼, 수건을 베개처럼 잘 정리하시고, 주님은 무덤을 나오셨다. 인생은 살아온 과거를 반드시 정리정돈하고, 묻을 것은 묻고, 남길 것을 남긴 후에 이 땅을 떠나야한다.
말씀이 충만하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다. 민족혁명의 과업이 갑자기 탄로나서 이집트를 떠난 40세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동안 뭘 했을까? 전승된 족장들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묵상하면서 ‘기도의 영성’으로 살았을 것이다. 나무 지팡이를 들고 바다를 향해 기도하니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서 홍해가 갈라졌다. 나무 십자가에 메달린 주님께서 3일 동안 무덤에서도 기도하시니, 세상 바다의 죄악이 모두 물러나고,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의 숨결’을 제자들에게 상속하셨다.
살다가,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뺨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성령의 행함이다. 정신의 오른뺨을 맞았거든, 왼뺨도 돌려대면서 확실히 살아나야한다. 정신이 살아나면, 인생이 확실히 달라진다. “창훈아!”라고 누가 나를 부르면, 나는 마음이 “확” 쏠린다. 나도 그러한데, 하물며 주님은 오죽하실까? “예수님”라고 부르면, 주님은 지금, 곧, 응답하신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요21:15)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했다. 무덤은 곧 ‘인생의 죽음’이다.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과 함께 이미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한 것과 같아서, 이제 죽지 않는다. 이것이 영생이다. 죽음 이후는 ‘육체의 옷’을 벗고, ‘새로운 부활의 영체’로 갈아입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본래 심판이 있으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이 없다. 이미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심판’이 면제된다. 그리스도 앞에서 ‘영광의 상급’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붙들어야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간다. 주께서 무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