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갈 운명적 아담의 후손인 내게 복음은 영생을 믿게 한다. 믿음은 반석위에 있음이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심판 비유가 나온다. 종말의 심판이며, 또한 인생의 종말에 있을 심판이다. 모든 판결은 ‘판결의 근원’이 있다. 법률조항의 해석이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판결함에 있어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다. 배고플 때 식사대접, 목마를 때 음료수, 나그네 되었을 때 숙박제공, 추울 때 옷 선물, 병들었을 때 병문안, 옥에 갇혔을 때 접견한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첫째, 같은 교회에 있는 교회 형제들이 곧 예수님의 형제다. 마태복음 26장에 나온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성경해석에 따라 각양각색이겠지만, 성경본문에 따라 그 뜻을 추적하면,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누가 예수님의 사람들인가? 멀리서 찾을 것 없다. 교회를 지키는 성직자요, 교회사역에 힘쓰는 거룩한 자들이요, 또한 모든 성도들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했는데, 주님은 마태복음 18:5에서 “어린아이”도 포함시켰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18:4~5)
이 성경구절이 구체적으로 확장되어 확정된 것이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의 심판비유다. 주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주님을 믿는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하면, 주님을 실족시킨 것이다. 주님을 믿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해 거룩함으로 기도하고, 사랑하고, 관용으로 용납하자!!
믿음은 지극히 작은 자를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주님의 ‘얼굴’로 섬기는 것이다. 사랑으로 마음의 문을 넓히면, 주님이 교회 곳곳에서 충분히 보인다. 눈 뜨고, 보물 찾듯이 예수의 마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자. 예수님의 여동생, 예수님의 남동생,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여인, 예수님의 친구,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의 가족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그대도 역시 예수님의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