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그리스도의 진리를 ‘율법’으로 삼는 위험을 조심해야한다. 내가 십자가의 진리를 처음 접했을 때, 그 진리가 내게 율법조문이 되어 과거를 몹시 비판하였으니, 그 또한 의롭지 못한 ‘죄의 잉태’임을 알게 되었다. 악을 악으로 판단하는 것도 ‘죄’가 될 수도 있다. 악을 악하다고 말할 때, ‘악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용서받을 죄인’이요, ‘잠정적 의인’이며, 부름받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혹여, 십자가를 심히 반대했던 이단의 괴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그 심중에 품었으면 어찌 하리요. 그러므로, 나는 내 이름을 십자가에 못 박듯이, 내가 미워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십자가의 거룩한 축복이 있기를 사랑으로 빌었다.
왜!! 마태복음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났다”고 했을까? 또한 요한1서는 “적그리스도들이 요한 공동체에서 나갔다”고 했고,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떡조각을 받고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나갔으므로, 적그리스도가 되었으니, 원수된 그들을 위해 기도함이 “서로 사랑”의 확장이다. 주님은 “원수를 증오하고 대적하라”고 하지 않았다. 적그리스도는 적그리스도로 구분하되, 그들을 위해 기도할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그것을 망각하면, “적그리스도를 적그리스도로서” 미워함으로, 미움의 자식이 될 수 있다. 악을 미워하다가 악인까지 미워하면,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 죄에 속해서 어둠의 자식이 된다. 요한1서는 그것을 심각하게 경고한다. 적그리스도들은 모두 참 그리스도 예수님께 돌아와야할 탕자들이다.
그러므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미워하되, 악인을 증오하지 말고, 관용과 용납으로 그들을 십자가의 은혜로서 용서할지니, 우리가 모두 용서받은 죄인이 됨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다.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을 죄인이다. 죄인을 미워함으로 다시 죄인으로 추락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지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속 미움과 싸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