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에 소금과 빛의 비유가 나온다. 그 중에서 소금 비유는 상당히 유명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다. 이 구절만 읽으면, “짠 맛”에 방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앞에 구절과 연결해서 읽으면 ‘밖에 버려져’에 방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밖에 버려져’는 바깥 어두운 세상이 아니고, ‘세상’을 뜻한다. 앞 구절에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라고 했다. 곧, 박해가 ‘짓밟힘’이고, ‘버려짐’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버려짐을 당하고, 채찍질과 짓밟힘을 당했다. 당신의 모든 사랑과 의로움을 이 땅에 나눠주시고, 의값이 모두 사라져서 죄인의 몸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이다. 소금돌은 물속에 있다가 짠 맛을 물속에 풀어내면, 돌만 남은 소금돌은 바깥에 버려졌다. 본래 소금이 많았던 소금돌이 물속에서 짠 맛을 내놓음으로 돌맹이는 길가에 버려진 것이다. 그와 같이 주님은 모든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건축자의 버린 돌맹이처럼 버려졌다. 이것이 주님의 소금사랑이다. 우리도 주님의 그러한 사랑을 진실로 본받아야겠다. 소금의 짠 맛이 소금돌에 붙어 있는 것이 문제다. 소금돌에 있는 짠 맛은 물속에 풀어져서 음식으로 가야한다. 소금의 짠 맛이 소금돌인 내게만 있다면, 그것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같다. 소금비유의 핵심은 짠맛을 모두 나눠줌에 있다. 그것이 소금과 빛의 공통된 특징이다. 내게 있는 것을 주지 않으면, 어찌 누군가 받을 수 있으리요. 주님은 주님의 몸과 피를 실제로 우리에게 주셨고, 십자가로서 그것이 확정됐다. 요한1서 3:16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다. 아멘!! 소금돌이 짠 맛을 모두 잃으면, 그 사명을 다했으니 짓밟힘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이다.
– 참고도서, 열린다 성경(성전이야기) p230 소금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