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누군가 내게 “이것은 어때요?”라고 할 때, 마음의 빗장이 그냥 스르르 열린다. 그러면, 받아드린다. 믿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가자”고 하면, 나는 간다. 그냥 믿는다. 내 마음에서 “가자”는 감동도 있고, 누군가 “가자”고 하면, 그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육체로서 붙잡길 원했지만, 주님은 “내가 떠나야, 진리의 성령이 온다”고 했다. 엘리야도 엘리사에게 “내가 떠나는 것을 네가 본다면, 너의 소원이 이루리라”고 했다. 나는 내가 믿었던 굳은 신념을 1년전에 떠났다. 그것은 반석에서 벗어나, 흔들리는 비탈로 떨어지는 위험이었으나, 떨어지는 추락에 평강의 날개가 있더라. 유대광야로 내몰린 예수님께 ‘말씀의 반석’이 있더라.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아도, 주님은 십자가 밑에 있는 무덤 너머 ‘부활의 광채’를 보았다. 빛은 어둠에 갇히지 않는다.
조금, 어리석지만, 나는 초대교회 베드로, 안드레, 사도요한, 바울, 스데반, 마가, 누가, 마태, 삭개오, 베다니 마리아 등등 성령을 받은 마가의 다락방을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그 시대의 표본인가? 인류의 영원한 표본인가? 나는 답을 모르겠다. 단지, 내 안에 계시는 새로운 존재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오라고 한다. 거기가 어디인지, 알지를 못하겠는데, 그리로 오라고 하네. 성령의 불이 임재하는 그곳으로.
세례명이 ‘누가’여서 나는 누가복음에 더욱 애착이 간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고 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의로운 분노’가 솟구쳤다. 오늘은 전과 다르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밀려왔다. 원수였던 자들이 친구가 되었구나!! 훗날 로마제국와 참 이스라엘인 기독교가 친구가 되었음이여!!
오늘은 창세기를 비롯해서 성경을 많이 읽었다. 베냐민에게서 ‘잔’이 발견되었을 때, 왜 나는 겟세마네 동산의 그 ‘잔’이 자꾸만 떠오르는지, 참 요상타. 유다는 베냐민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대신 감옥에 갇히겠다고 하는데, 왜 자꾸만 눈물이 나는지….. 그때도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했음이여!! 누가 옳고 틀림이 있으랴,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으니, 강물과 같아서 홍수로 모든 죄악을 씻는다.
나는 다윗의 인격에 새롭게 감탄하였다. 사울이 죽었을 때, 그는 참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로서 사울’로 추앙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으면, 후임자는 전임자의 권한을 불인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다윗은 끝까지 사울을 인정했고, 사울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그리스도임’을 인정했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것이 사랑의 인격이구나!! 적국의 군대장관 브니엘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도, 최고의 예우를 갖춰서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었다’면서 슬퍼했다.
** 나는 가끔, 기존에 알던 성경구절이 새롭게 해석될 때, 그 뜻을 그곳에 적어둔다. 혹여, 성령의 가르침이 있을까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