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21장밖에 안된다. 그 중에서 11장과 12장이 나사로와 마리아의 가족 이야기다. 심장부에 들어있는 사건이며, 공관복음에는 없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기까지 지체하신 후에 베다니 지역으로 이동했다. 요단강 저편 처음 세례받던 곳에서 이동했으니, 불과 1~2시간 거리였다. 뒤늦게 장례식장에 참석한 주님은 “나사로야 나오라”고 했다. 죽은지 사흘이 지났을 때다. 그리고, 2~3달이 지났고, 베다니 마리아는 향유옥합을 깨뜨리면서 주님의 발을 씻었다. 주님은 “장례식을 예비함”이라고 말씀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닫힌 돌문을 활짝 여시며, 부활하셨다.
주님은 맨 처음, 막달라 마리아를 만났다. 만나서 했던 말이 과연 무엇인가? “마리아야”라고 불렀다. 베드로를 만났을 때도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렀다. 일곱 제자들이 주님인줄 몰라 봤을 때에도 주님은 그들을 “애들아!”라고 부르셨다. 주님은 항상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부르면, 무덤에서 나온 나사로처럼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향해 나아간다. 주님이 부른 것은 ‘부활’의 약속이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이 나사로의 영혼을 불러서 육체를 일으켰다. 그처럼, 주님께서 성도의 이름을 부르면, 그 말씀에 따라 성령께서 그 사람을 ‘죄악의 무덤’에서 불러내신다.
“마리아야!”라고 주님이 부르는 그 순간, 마리아는 ‘어떤 무덤’에서 구출받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주님이 불러줌으로 무덤에서 벗어난다. 하나님이 모세를 “모세야”라고 불렀을 때, 모세는 ‘인간 모세’에서 ‘하나님의 모세’로 변화된다. 이름은 신분의 새로운 변경이다. 대통령이 부르면, 청와대에 가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부르면 어디로 가겠는가!!
“창훈아!”
오늘 새벽, 주님은 내 슬픈 탄식에 “창훈아!”라고 모기처럼 말씀하셨다. 그때, 나를 억누르던 무덤이 벗겨졌다. 주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면, 그때 생명이 찾아온다. 주님을 떠나서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주님께 붙어 있어야 사랑과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붙어있는 가지’가 충분히 주님께 열매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님께 붙어있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