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나는 매일 거친 언덕이다. 사랑의 숨결로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무엇인가. 성경앞에서 성령의 바람을 맞이한다. 47세, 그해 2월, “주여! 성경을 열어주소서”라고 간구했으니, 그해 12월 성령에 이끌려 나는 성경속 십자가의 주님을 만났다. 이제, 성경은 내 생명이다.
내게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청년과 소년과 소녀와 모든 인생들이 성경을 즐겁게 읽는 것이다. 뉴스를 보거나 읽거나 무슨 선한 것이 있으랴. 풀이 시들고, 꽃이 마르듯 허무하고 공허하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는 성경에서 출발한다. 마음을 열고, 그 앞에 서면, 생기가 가득 담긴다.
다윗과 사울의 마지막 전쟁은 깊은 교훈을 준다. 블레셋이 사울을 죽이려고 마지막 전쟁을 할 때, 다윗은 배제됐다. 섭섭함이 삼상 29:8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이 행하심이다. 이미 다윗의 식솔들이 아말렉에 의해 침략당했다. 다윗은 그것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다급하게 가게 하신 것이다. 사람은 모르고, 하나님은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겨야한다. 보아스에게 어떤 아무개가 신발을 벗어주며, “기업을 네가 무르라”고 주권을 넘겼다. 모세도 그러했다.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맡겼다. 여호수아도 ‘미가엘 천사’앞에서 신발을 벗으며, 전쟁의 ‘명령권’을 하나님께 맡겼다. 사람이 하면, 그 수준이 그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오늘도 묵상한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나,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6)
다윗의 두 아내도 포로로 끌려갔고, 다윗의 본거지 시글락이 슬픔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라고, 하나님이 그에게 대답하여,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다윗은 600명의 용사를 데리고 추격했다. 200명이 피곤해서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니, 400명만 데리고 다시 추격했다. 그때, 거지 나사로처럼, 강도만난 병자처럼, 어떤 소년 거지를 길에서 만났다. 다윗은 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떡을 주고 물을 마시게 하니,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니, 아말렉 사람의 소년 종이었다.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삼상30:13)
왜, 나는, 이 대목에서 읽기를 멈추고, 무덤에 있듯, 울어야하나요? 그때, 아말렉 군대는 노략물로 먹고 마시고 춤추고 있었다. 다윗은 그들을 진멸했고, 전리품을 모두 찾았다. 돌아오는 길에, 브솔에 남겨진 200명이 다윗의 400명을 영접하니, 전쟁에서 싸운 자들이 “전리품은 저들에게 주지 마소서”라고 했다.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나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삼상30:23)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엘리사가 거문고를 탈 때,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음이여.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연합군이 모압을 이긴다는 예언이 나왔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핏물전쟁이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으니, 얻은 자도 잃은 자도 그 소유는 하나님께 있음이다.
열왕기하 4장 32절에서 엘리사가 다락방에 들어가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혀있고, 지팡이가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다. 인생은 결국 두 사람, 곧 주님과 나의 만남이다. 엘리사는 그때 무엇을 보았을까? 성경은 증언하길,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주여! 나를 이렇게 날마다 살리소서! 문을 닫으면, 인생은 결국 두 사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