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原罪)은 근원적 죄(罪)로서 창세기 3장 에덴동산에서 발생한 죄다. 죄(罪)는 법을 범한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2가지 법을 줬다.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라’와 ‘선악지식의 나무열매를 따먹지 말라’이다. 에덴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지식의 나무가 있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먹을 수 있는 열매였고, 선악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는 열매였다. 자!! 그런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도 따먹었고, 이후 아담과 하와와 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고, 젊은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 그때, 생명나무의 길이 숨겨졌다. 선악나무는 무엇인가? 생명나무는 무엇인가?
모세 5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썼다. 이집트에서 10대 재앙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했다. 그때, 하나님의 권능이 이집트에 드러났다.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을 받았고,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심판을 면했으나, 이집트 사람들은 장자가 죽었다. 해가 암흑처럼 검어지는 ‘깊은 어둠’이 그때 임했다. 또한, 홍해도 갈라졌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모세는 창세기를 통해 우주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천명한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서, 세상 열방을 다스리도록 제사장 민족으로 부르셨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은 누구의 것이며, 아담과 하와는 누구의 것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곧, 하나님은 보이는 하나님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은 보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으나, 본성이 흙으로 지어져서 유한하다. 보이는 유형은 흙이지만, 담겨진 내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다. 내면의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으니, 곧 말씀이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영생이며, 생명나무의 열매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중에서 아담과 하와를 택해서 에덴동산에 두심으로 ‘영생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했으니, 그것이 ‘생명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원죄(原罪)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죄(罪)는 법을 범한 것이니,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으니 죄(罪)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법을 줬는데,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그것이 ‘죄’다. 그들의 에덴동산에서 어떤 선악지식의 열매를 따먹어서 법을 범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지만, 말씀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가령,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믿으라”고 했는데,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으면 그것으로 심판을 받는 것은 법을 범해서 그렇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낸 그것이 ‘새로운 법’이 주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님은 요한복음 15:22에서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말씀이신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 ‘새로운 나무’로서 ‘십자가의 법’이 선포된 것이다. 믿으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그것으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한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생명나무의 길이며, 부활의 주님이 영생을 약속하셨다.
원죄(原罪)와 관련해, 어리석은 자들은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를 인간적인 지체 비유로 해석한다. 성범죄와 폭력과 마약사범과 권력부패가 사회적 문제지만, 하나님은 그것보다 ‘죄’이 집중하신다. 세상적으로 나타난 범죄들은 하나의 현상들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인간의 죄성(罪性)이다.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뱀의 말을 듣게 되었는가? 또한, 뱀의 말을 듣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다. 죄는 하나님과 단절이며,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지 못하는 것이다. 도덕적 타락은 사소한 현상에 불과하고,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다. 죄는 사망이다. 왜냐면, 하나님의 생명이 사라져서 그렇다. “따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이 아담과 하와에게 그대로 이뤄졌으니,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정녕코 그들은 죽었다. 하나님의 생명, 영생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이 세상에는 두가지 권력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권력, 마귀의 권력이다. 하나님께 속했으면, 마귀에게 속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한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립이다. 지금, 살아있으면 죽은 존재가 아니다. 반면, 지금 살아있지 않다면 죽은 존재다. 생명과 사망은 극명한 대립관계다. 하나님께 속했는가? 마귀에게 속했는가? 두 세계의 영적 전쟁이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께 속한 아담과 하와를 말하고, 창세기 3장은 마귀에게 속한 아담과 하와를 말한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로 그 운명이 달라진다. 한반도에는 남한정권과 북한정권이 극명하게 대립한다. 여기에 속했으면, 저기에 속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5:26에서 “아버지께서 자기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고 했다. 이 생명이 ‘영생’이며, 하나님의 생명이며, 성령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남으로 죄를 지은 인류는 사망에 갇혀서 마귀의 종이 되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되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다시 주어진다. 이것이 구원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예수님께 속한 것이고, 예수님께 속한 것이 성령께 속한 것이며, 성령께 속한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 속한 것이 아니면, 그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삼위일체로서 ‘완벽한 연합’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면, 예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과 성령의 계시가 모두 하나로 일체된다. 진리의 성령은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벗어나지 않는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곧, 죄(罪)다. 죄는 아들의 생명이 없는 것이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의 성경해석을 매우 조심해야한다.
거듭 말하지만, 원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예수님은 원죄를 그렇게 해석했다. 신약의 에덴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이며, 그때 십자가의 나무가 새로운 선악나무로 주어졌다.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은 아버지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담은 묻지도 않고 그냥 따먹었다. 주님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물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요한복음 18:11에서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잔을 뜻한다.
첫 아담은 불순종으로 생명나무의 길이 막혔고, 주님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었고, 무덤에 묻혔고, 부활하심으로 생명나무의 길이 인류에게 열렸다. 이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영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십자가는 창세기 에덴동산의 선악나무가 새롭게 나타난 것이니, 그 누가 그것을 부인하랴!! 에덴동산에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함께 있었다. 그와 같이 교회마다 십자가의 선악나무가 있으니, 또한 생명나무가 있다.
원죄(原罪)는 근원적 죄로서,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범한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며,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이니, 곧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 말씀을 범한 것이다. ‘선악과’의 비유와 상관없이, 말씀을 범한 것이 곧 ‘원죄’다. 선악과를 잘못 해석하면, 성경전체가 어그러진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선악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 생명나무의 길을 나타내셨는데, 무슨 다른 해석이 필요하랴!! 예수님과 다른 성경해석을 함으로 비진리의 죄를 짓지 말자!! 예수님의 성경해석이 가장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