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에 구원주가 많다. 투수도 구원투수다. ‘구원’, ‘구제’, ‘구속’(救贖)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성경적 구원을 이루신 분이 성경적 구원주다. 성경적 구원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면, 한국땅에 출현한 많은 구원주들이 성경적인지 알 수 있다. 성경은 진리의 판별식 D와 같다. 과연, ‘성육신-십자가-부활’의 매커니즘이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임을 증명할까? 아니다. 3가지 단계에서 ‘성경’이 빠지면, 각종 이단의 난무한다. 이단들은 공통적으로 ‘변질된’ ‘성육신-십자가-부활’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도 ‘진리의 개념’이 있으나, 성경에서 벗어난 빗나간 개념들이다. 그래서 ‘성경’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15:3을 보자!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을까? 그 근거가 나와있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약속이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성경의 각본대로 그가 성취하셨으니, 성경적 구원이 우리에게 있고, 그래서 주님은 성경적 구원주다. 오늘, 누군가 내게 돈 1억원을 준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내 삶에 있어서 “경제적 구원자”로 받아드릴 것이다. 그렇다고, 1억을 준 그 사람이 성경적 구원주는 아니다.
바울이 쓴 편지는 예수님이 전한 말씀의 인용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3번 교육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또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같은 내용을 다시 가르치시니, 부활의 주님을 보고서야 ‘십자가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부활하기 전 십자가 교육, 부활하시고 십자가 교육을 보자. 누가복음 18장과 24장이다.
[눅18:31~34]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눅24:44~48]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제자들이 왜, 십자가 사건 전에는 깨닫지 못했을까?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해도, 아직 부활이 성취되지 않았으니, 부활의 본질을 몰랐던 것이다. 십자가 사건도 동일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으니, 미래의 십자가를 안개처럼 상상했다. 그때가 오니, 십자가는 홍수처럼 덮쳤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의 몸으로 살아나셨다.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성경적으로 주님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증표다. 성경적 그리스도는 어떤 그리스도인가? 주님은 주님의 사명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요한복음 15장 13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곧, 대속적 그리스도이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성경속에서 나무, 죽음, 어린양, 반석, 돌, 생명, 부활, 구원의 단어가 등장하면, 소풍날 ‘바위틈’에 보물쪽지를 찾듯이 살짝 들어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빛처럼 얼굴을 내밀 것이다. 성경의 모든 인봉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 성육신-십자가-부활로서 풀려진다. 죄사함의 대속적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없다. 잊지말자!! 또한, 꼭 믿자!! 믿는 자는 살아나리라.
‘십자가’의 개념을 명확히 깨닫고 성경을 보면, 모든 사건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쉬운 이야기로,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했는데, 왜 아담과 하와는 정녕 죽지 않고 ‘추방’만 당했을까?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는 그 명령어를 겟세마네 동산까지 보류하셨다.
그 말씀이 예수님께 이뤄졌으니, 그 은혜로 아담과 하와까지 십자가의 구원을 그들 나름대로 받았던 것이다. 아담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갔으나, 나름대로 가정을 이룬 것이다. 그 증거물이 곧 ‘가죽옷’이다. 가죽옷은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예표한다. 창세기 2장의 생명나무, 창세기 3장의 가죽옷이 곧 십자가의 피흘림을 나타내는 ‘복선’인데, “십자가는 뜻이 아니다”고 성경을 왜곡해 해석하는 자들은 ‘죄’의 근원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아담의 죄도 미리 용서하시고, 가죽옷을 입히셨는데, 그를 믿는 성도들이랴!! 그리스도를 옷입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7) 아담이 가죽옷을 입듯,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그리스도를 옷입고, 하나님과 연합한다.
‘구원의 창조’와 관련해 덧붙이면, 주님은 히브리서 2:10에서 ‘구원의 창시자’로 증거된다. 이는 새로운 생명, 하나님적 생명, 영생을 뜻한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창세기 3장에서 멈췄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에서 초기화되고, 무덤에 죄가 묻히면서, 창세기 2장이 다시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부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고, 이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들의 형상과 모양으로 구원을 창조하시니, 그를 믿는 자마다 죄가 없어지고,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우리의 형상과 모양’은 ‘십자가의 형상과 부활의 모양’을 말한다. 복음서는 그것을 증거한다.
성경적 구원주와 관련해, 베드로의 증언이 가장 확실하다. 이 구절을 암송하고, 주님의 이름을 자주 부르자!! 난관이 홍해처럼 갈라지면서 구원이 임하리라. 구원주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없다. 인류문명이 30C가 되어도, 해가 서쪽에서 떠도 불변의 진리다.
[사도행전 4:11~12]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