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날마다 성경 1장읽기를 10개월 정도 하고서, 어느날, 기도하는데, “신약이 구약의 답이다”는 말씀이 왔다. 또한, “십자가의 열쇠로 구약이 풀린다”는 말씀도 왔다. 두 개의 문장이 내 마음의 수면위에 떠올랐다. 그때부터 성경읽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마치, 보물찾기같다. 구약은 분명히 역사적 사건인데, 거기에 ‘십자가’의 열쇠를 꽂으면 생명력이 생긴다. 신비했다. 거의 모든 사건이 그러했다. 내가 30년 동안 머물렀던 곳에서 배웠던 지식이 나를 끌어당길 때, 나는 그 성경구절을 직접 찾아서, 십자가의 판별식을 넣어본다. 그러면, 과거의 성경해석은 풀처럼 시들었다. 십자가의 능력앞에 뱀의 해석은 죽는다.
나의 해석이 옳은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누구의 해석만이 옳다고 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이 모두 다른 관점에서 작성되었듯이, 성경해석도 그러하다. 단지, “이것만이 진리다”고 확정하면서, “다른 모든 해석이 틀렸다”고 하면, 그것은 깊게 고민해야한다. 과연, 그것이 그러한가? 그것을 분별할 때, 십자가의 판별식이 능력을 발휘한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점점점 교세가 시들고, 이단교회는 점점점 교세가 확장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누구나 스스로 성경읽기’에 눈을 뜨길 바라면서, ‘구원론’을 집필했다. 구원론은 ‘성경적 십자가’에 대한 비유해석이다.
초대교회는 구약정경만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신약정경과 구약정경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구약의 문제집에 신약의 답안지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정경을 ‘구약’으로 치부하고, 신약정경만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열쇠가 자물쇠를 잃어버리니, 열쇠가 자물쇠가 되어 버렸다. 십자가는 구약정경을 해석하는 핵심 키워드다. 구원은 구약정경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구약이 없다면, 신약은 뿌리없는 나무와 같다. 마태복음 4장을 읽을 때, 반드시 창세기 3장을 함께 놓고 읽는 것이 좋다. 최소한 마태는 창세기 3장 사건을 염두하고 마태복음 4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건만 염두한 것은 아니다.)
전도서 1:2에 ‘헛됨’이 4번 반복되고, 이어서 무한대의 헛됨이 나온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루를 살아보니, 인생을 살아보니, 참으로 허망하다. 여호와의 기운이 불어오니, 내 삶의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든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다. 십자가는 “헛됨”을 확정했다. 그리고, 인생은 주님안에서 안식하고, 부활을 꿈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