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교회는 요즘 회개기간이다. ‘죄’는 항상 불편하다. 남의 죄를 지적하면, 그로 말미암아 ‘의로운’ 감정이 생기는 듯 한다. 내 죄가 생각나게 하는 분은 곧 성령님이다. 성령이 임하면, 남의 죄보다 내 죄가 먼저 생각난다. 세상은 내 죄를 비추는 거울이다.
삼무엘하 3장에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이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간다”고 했다. 그리고, 아브넬 군대장군이 사울의 집에서 권세를 잡고, 사울의 첩을 아내로 맞았다. 이에,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 왕이 격분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 백기투항했다. 모든 일은 사소하게 시작한다.
원수 아브넬을 넓은 관용으로 받아드린 다윗!! 그러나, 요압에게 아브넬은 동생을 죽인 원수였다. 요압은 친구처럼 다가가 칼로 찔러 아브넬을 암살했다. 그 잔혹함이여!! 그때 다윗은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 것이다”고 했다. 이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도 낮잠을 자다가 칼에 찔려 암살당했다. 그 형국이 아브넬이 죽임 당한 모습과 흡사하다. 사무엘하 3장과 4장 이야기다.
이제, 사무엘하 11장으로 가면, 이방인 우리아가 등장한다. 밧세바의 남편이며, 충성자다. 밧세바와 불륜에 빠진 다윗이 ‘간통죄’를 덮으려다가 실패하자, ‘우리아의 손’에 요압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우리아를 죽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아는 죽었다. 그 보고를 받자, 다윗이 말하길,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킨다”고 말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에 ‘다윗’은 없을까? 나단 선지자가 그 사건을 들통내면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폭로했다. 삼무엘하 12:7이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삼하12:10)
남의 죄가 보이거든, 그것은 내안에 큰 죄를 나타냄이다. 죄는 마음 깊은 곳에 독사처럼 숨어있다. 믿음으로 자신을 향해 회개의 불화살을 쏠지라. 이사야서 40:7에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기운, 성령이 불어오면 마음의 풀밭이 마르면서 뱀의 정체가 들통난다. 죄의 독사가 마음속에 있다. 없다면, 거짓말쟁이다. 사울 집안의 이야기가 결국 다윗 집안 이야기로 귀결된다. 죄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다. 나로부터 출발이다. 죄를 자백하지 않는 자마다 죄속에 있으리라. 주앞에 죄를 토설하는 자마다 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