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아 18장과 19장에는 독특한 사건이 나온다. 토기장이 도자기 사건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에게 가라”고 하셨고, 이어 “도자기를 사라”고 하셨다. 끝에, “도자기를 깨뜨려라”고 했다. 3가지 사건은 곧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내릴 재앙을 상징한다. 도자기가 깨뜨려지듯, 예루살렘이 멸망한다. 토기장이가 자기 뜻대로 그릇을 만들 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향대로 그릇을 만든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다. 토기장이도 하나님, 예레미아 선지자도 하나님을 상징한다.
우리는 삶속에서 그릇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또는 건물이 붕괴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과연, 그것은 무엇을 상징할까? 예레미아에게 하나님은 도자기 그릇을 사게 하고, 그것을 깨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 함락을 예언하셨다. 성령의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작은 사물의 변화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면 듣는 것이다. 들으려고 한다고 해서 들려지지 않는다.
도자기를 깨뜨리고, 그 의미를 예레미아가 설명하지 않는다면, 백성들과 장로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믿음의 귀가 없다면 ‘상징의 예언’은 들리지 않는다. 설령,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우연의 일치로 치부한다.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봐야하는가? 성령속 중요사건은 대부분 ‘십자가 사건’과 연결된다.
19장 후반부에 보면, “토기장이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다”(렘19:11)고 했다. 성전멸망 예언이다. 바벨론 함락 사건, 로마의 성전 파괴 사건을 동시에 연결된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성전멸망 사건이 예언된다. 그런데, 주님의 몸이 파괴되어 십자가에서 찢겨 죽임을 당했다. 한번 죽은 주님의 육체는 그것으로 끝났다. 우리의 죄를 대신한 ‘육체’다.
죄는 한번 용서받으면, 그 죄는 그릇이 깨지듯, 문서가 불타듯, 완전히 소멸된다. 과거의 모든 죄는 성전이 멸망당하듯, 완전히 파멸한다. 도자기가 깨지듯, 죄의 그릇은 다시 새롭게 될 수 없다. 주님이 부활하시듯, 새롭게 창조된 의의 그릇으로 인생은 살아간다. 주님은 죽으셨고, 묻히셨고, 살아나셨다. 그와 같이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묻히고, 다시 살아난다. 새로운 육체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께서 ‘구원’을 도자기처럼 창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