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2:20]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가복음 2장은 ▲중풍병자 고침 ▲마태 전도 및 죄인들과 식사 ▲금식논쟁 ▲밀밭 이삭 사건이 나온다. 중풍병자를 제외하면, 모두 ‘먹는 것’과 연관된다. 해당 사건을 읽을 때는 반드시 ‘영적 양식인 말씀’도 함께 고려하며 읽는 것이 좋다. 세례요한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왜 금식하지 않느냐?”라고. 그때, 주님은 신랑의 혼인잔치 비유를 하셨다. 주님은 이 땅에 신랑으로 오셨다. 이단들은 신약은 ‘아들시대’라고 하는데, 아니다. 주님은 ‘신랑’으로 오셨고, 신부된 교회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기꺼이 주셨다.
신랑을 뺏기면, 금식한다. 제자들이 언제 금식하였는가? 십자가 사건이다. 금요일에 죽으시고, 토요일에 무덤에 계시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일요일에 살아나신 주님은 곳곳에서 떡을 떼셨다. 디베랴 호수에서는 고기반찬에 제자들과 아침식사까지 하셨다. 기독교는 먹는 종교다. 2천년 넘게, 성령을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풍성하다. 지금, 영적 양식의 기갈인가? 신랑이 없어서 그렇다. 성령이 오면, 드라마를 봐도 말씀이 들려온다. 신랑을 뺏기면, 음식도 끊긴다.
2:22절에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는 유명한 성경말씀이 있다. “새 시대는 새로운 제도”로도 응용되고, “새해는 새마음”으로도 활용된다. 포도주는 성만찬식에 나온다. 결국, 주님의 십자가 피흘림을 뜻하고, 성령의 포도주는 ‘진실한 믿음’으로 담을 수 있다. 성육신의 주님은 제자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었으나, 부활의 주님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믿음으로 만질 수 있고, 성령을 통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성경말씀을 읽으면, 말씀이 살아서 움직인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는 “성령을 각자 심령에 담는 것”을 뜻한다. 성령의 인격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나타난다. 성령을 받았는가? 진정 그러하면, 성경말씀에 취해서 살 것이다. 성령과 말씀은 모두 영적 포도주다. 진리의 성령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임재한다. (권력, 돈이 마음에 있으면, 말씀이 들리지 않음으로 금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