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4:41]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씨뿌리는 비유, 진리의 등불비유, 자라나는 씨비유, 겨자씨 비유를 하시고, 주님은 그날 저녁에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출항하셨다. 이 사건은 십자가 사건을 예표한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고, 그때 광풍이 일어났다. ‘저편’은 거라사인 지방인데,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마가는 해당 사건을 통해 죽음의 강을 건너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배’로 충분히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죽음을 대비하려고, 각종 보험과 상속재산과 자손과 건물을 남기고서, 명예로운 이름과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만, 그것과 영혼의 출항은 전혀 상관이 없다. 죽음의 강을 건너는 자는 ‘주님’과 함께 해야만 광풍을 이길 수 있다. 공동묘지에 있던 쇠사슬에 묶인 자도 주님이 나타나자, 군대귀신이 물러났다. 주님이 없으면, 인생은 군대귀신에 들려서 살아간다.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면서,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니나이까”라고 말하자, 주님은 잠에서 깨어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셨다. 무덤속에서 깨어나서,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가서 “평안하라”고 하셨고,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평안하라”는 복음을 전했다. 권력의 칼을 무서워할 것 없다. 혹여, 죽어도 주님께서 영생을 주신다. 육체의 고통은 가시에 찔림에 불과하고, 영생의 옷을 입으면 기쁨과 환희와 평강이 임한다.
마음의 출렁거림이 문제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광야로 내몰려도 그곳이 천국이다.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궁궐에 있더라도 그곳이 감옥이며, 지옥이다. 천국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천국의 씨가 뿌려지면, 길가밭과 돌짝밭과 가시밭에서 씨앗은 죽는다. 주님의 씨앗이 뿌려진 사람은 이 세상속에서 ‘묻힘과 죽임과 모멸과 오명’을 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마음의 밭에 있느냐이다. (주님은 골고다 광풍속에 던져졌고, 3일후에 건너편에 도착해서 육체로 살아나셨다. 무덤에서 나온 것은 거라사인 공동묘지에 도착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