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갈릴리 광풍이 주님의 말씀을 잔잔하고 고요해졌다. 무덤사이에 있던 미친 자는 밤낮 소리를 지르고, 쇠사슬과 고랑을 채워도 깨뜨리면서 고함을 질러서 누구도 감히 손댈 수가 없었다. 주님께서 “귀신아! 물러가라!”고 하시니, 군대귀신이 물러갔다. 돼지떼속에 들어가서 몰살했다. 주님은 하늘에서 이 땅에 ‘성육신’의 헬기를 타고 내려와서, 각종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서 밤낮 잠을 못자면서 노예생활을 하는 우리를 구출하신다.
이 사건도 십자가 사건을 예표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이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쳤다”라고만 인식하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감동도 없다. 성경말씀은 구원을 주는 능력이 있다. 지금 나와 상관있는 성경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해야한다. 십자가를 통해 주님께서 구원을 주기 때문이다.
“무덤사이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주님을 맞이했다. 인생은 사형선고를 받은 자로서, 무덤을 향해 살아가는 사형수다. 모든 사람은 무덤앞에서 살아간다. 밤하늘을 올려보면 거대한 무덤속이다. 그런데, 무덤에서 살아나신 분은 예수님이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 대신에 무덤에 들어가서 살아나셨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 더 이상 무덤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고랑과 쇠사슬은 ‘수갑과 쇠사슬’로서 주님께서 체포당하셨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다. ‘죄’의 사슬이다. 귀신의 이름은 ‘군대’였다. ‘많음’이다. 현대인은 셀 수 없는 귀신들에 갇혀서 살아간다. 그래서, 십자가를 붙들어야한다.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오후 3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15장)
주님은 옷이 벗겨져 찢겨졌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하셨다. 반면, 군대귀신 들렸던 자는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았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