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장에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했다. 땅에 있는 지체는 ‘마음의 탐심’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내장(內臟)이다.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도 있다. 그렇다면, ‘위의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얼핏 보기엔 위의 것이 ‘위’에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위의 것도 아래에 있다. 위의 것들을 ‘땅’에서 찾아야한다. 바울이 위의 것을 위에서 찾으라고 했다면, 땅에서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골로새서 3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도들의 삶이지, 유체이탈이 아니다. 곧, “위의 것”은 영혼이 위로 가는 것이 아니다.
3:18 이후로는 가족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규율을 말한다. 새로운 가족법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히지 말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들은 자녀에게 화내지 말고, 직장인은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성실하게 일하고, 사장들은 직원들에게 의와 공평을 충만히 베풀라고 했다. 이것이 땅에서 이뤄질 ‘위의 것들’이다.
골로새서 3:5~11은 ‘땅의 것들’이다. 주님은 이러한 것들을 일컬어, ‘마음의 죄악’으로 규정했다. 입안에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고, 입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마음을 더럽게 한다고 했다. 마음속에 있는 ‘악’(惡)이 곧 ‘땅의 것들’이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스스로의 입술과 행함을 반성하면, 위의 것들과 땅의 것들속에서 춤추듯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땅에서 살아가니,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위의 것들과 땅의 것들을 스스로 인식하고, 분별하면서, 위의 것들을 찾고, 생각하며 살려고 의식적으로 몸부림을 쳐야한다. 아애, 개념조차 없이, “나는 위의 것들로 살고 있다”라고 스스로 막연히 믿으면 안된다. 사람은 절대로 위의 것들로 살 수가 없다. 성령을 찾고, 메달려야한다. 성령이 마음에 와야, 그때 위의 것들을 비로소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