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주님은 디베랴 호수에서 일곱 제자들을 만나서 그들을 설득해 예루살렘에 돌아가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해 오순절 다락방 선교역사가 일어났다. 사람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는 예측불허다. 천국은 밀가루 반죽에 누룩이 들어감과 같아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가지고 주님께서 축사하시니, 오천명과 사천명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
“어떻게 먹였는가?”
이것은 성경적 질문이며, 현실에서 그것을 각자 발견해야한다. 어떤 방법이든 주님은 각각 배불리 먹고 남게 하신다.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확정할 수 없다. 모세의 광야에서 먹었던 것은 메추라기와 만나였고, 예수님의 광야에서 먹었던 것은 “신비”로 감춰졌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어떻게 먹였는지, 숨겼다. 숨긴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신 주님의 능력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둘째, 지금 현실에서도 배불리 먹는 능력이 일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사무엘상 25장에서 다윗과 그의 군대가 배가 몹시 고팠다. 그때 나발의 양들을 돌봐주었는데, 나발이 그것을 무시했다. 이후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급하게 먹을 것을 차려서 그들을 먹였다. 먹을 것은 이렇게 외부에서 차려서 날아온다.
모세의 광야에서도 메추라기가 외부에서 바람을 타고 왔다. 이집트에서는 외부에서 메뚜기가 날아와서 농작물을 없앴다. 풍년과 흉년은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에서 곡식을 얻었다. 이 또한 외부에서 공급된 식량이다. 돕는 베필은 밖에서 온다. 아담을 돕는 베필도 하나님께서 외부에서 데려왔다.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아담의 믿음이다.
외부에서 오면, 모두 돕는 베필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하와를 향해 외부에서 돕는 지혜가 왔다. 바로 뱀이다. 그것을 먹고, 하와는 잉태의 고통이 더해졌고, 남편은 해고당했다. 직장을 잃는 것은 잠시의 충격이지만, 하나님의 영생 직장에서 해고되었으니, 그 충격이 4천년 동안 이어졌다. 외부에서 온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드리면 안된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가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했어도 주님은 단호히 거부했다. 왜냐면, 긍극적 외부는 ‘위쪽’이어서 그렇다. 위쪽에 있는 것을 찾고, 사랑해야한다.
주님께서 먹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도하고, 말씀에 깨어 있으면, 주님이 주셨는지, 마귀가 줬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마귀는 주고서 더 큰 것을 뺏어가고, 주님은 주고서 더 넘치게 주신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주셨고, 독생자에게 있는 영생의 생명, 곧 성령까지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며, 5천명을 먹이신 긍휼과 자비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마가복음 6장(마14, 눅9, 요6)의 오병이어(五餠二魚) 표적을 읽으면서, 그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또한 마가복음 8장(마15)의 칠병이어(七餠二魚) 표적을 읽으면서 그 핵심을 파악해야한다. 핵심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다. 그것을 주님께 드렸고, 주님은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의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백성들에게 나눠줬다는 것이다. 떡 다섯 개는 하나님의 떡이다.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주님의 십자가 지팡이도 ‘하나님의 십자가’가 되었다. 하나님께는 능력없음이 능력있음으로 변화한다. 믿자!! 저주의 십자가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를 믿자!! 지갑에 오만원, 칠만원만 있더라도, 주님께 믿음으로 그것을 드리면, 자신의 부족한 능력도 주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신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신발벗기다. “모세야! 신발을 벗어라”고 했다. 신발을 벗는 것은 주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모세가 스스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 인정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신다. 그처럼, 각 개인의 자유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다. 사람은 못한다. 자신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마귀는 각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끝없이 유혹하지만, 불가능하다. 하나님 없이는 구원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려야한다. 그러므로, 오병이어(五餠二魚)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인 것이다. 있는 것이 없으니, 그것을 드림은 쉽다. 모세는 신발을 벗고, 지팡이를 하나님께 드렸더니, 창세기의 작가가 되었다.
묻자!!
나는 하나님께 나를 드렸는가?
드렸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