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8:29]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벳새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이다. 벳새다 맹인을 치료하실 때, 마을에서 벗어나서 눈에 침을 뱉어 고치신다. ‘마을’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권력과 돈의 집결지다. 주님은 벳새다 맹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고, 벳새다 출신 베드로에게도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고, 또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치셨다. 베드로의 눈을 가리고 있던 ‘마을의 것들’, 권력의지를 없애신 것이다.
나는 문제없다!!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다. 문제없이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그러한가? 정상인이 보기에 맹인은 앞을 못 본다. 그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완전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 ‘십자가’다. 세상 것들, 땅의 것들을 멀리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내면의 탐욕을 제거하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 ‘거룩’에 이르는 길이다. 마음의 탐욕은 땅에 있는 지체들이다. 그것을 십자가로 죽여야, 하늘을 향한 지체들이 자라난다. 곧, 하나님의 의(義)요, 영혼이다.
마가복음의 핵심부는 8:22~9:9이라고 할 수 있다.
1) 벳새다 맹인 치료
2) 빌립보에서 베드로 고백
3) 베드로의 반대 및 십자가 교육
4) 헤르몬산 변모사건
벳새다 맹인은 마을에서 벗어나서 치료를 하고,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처럼, 주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불러서 높은 산에 데려가서, 하늘을 바라보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셨다. 그곳에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금식기도를 했을 수도 있다. 그때, 그들의 눈이 떠지면서 모세와 엘리야까지 봤고, 주님의 찬란한 옷을 보았다. 주님은 본래 그렇게 찬란하셨으나, 평범하게 보였을 뿐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다. 사람들이 못 볼 뿐이다. 스데반은 땅에서 하늘을 올려 보는데, 그것이 보였다. 누구든지, 하늘이 허락하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