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고, 버려짐이 없으면 부활이 없다.
데살로니가서 1장과 2장은 복음과 사도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한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2:7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라고 말한다. 곧,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탁받았다. 위탁(委託)은 대신 맡았다는 것이며, ‘사도’(使徒)와 같은 뜻이다. 바울은 2:4에서도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같이 말함은”이라고 말한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로 말씀하셨다. “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가 아니다. 왜, “우리의 형상과 모양”의 복수형일까? 유대인들은 천사들을 포함한다고 하고, 혹은 삼위일체를 세 분의 하나님으로 각각 말해서 그렇다고도 설명한다. 어떠한 해석이든, ‘우리’는 복수형이다.
바울도 ‘복음의 모델’로서 ‘그리스도와 우리’를 내세운다. 1:7에서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으니라”고 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본받고, 나아가 바울과 빌루아노와 디모데를 본받고, 그러한 본(本)을 따라서 다른 성도들의 본(本)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본(本)은 죽기까지 낮아져서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하고, 부활하신 것이다. 곧, 순종(順從)이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그러한 주님의 순종, 인격적 복음을 본받아서, 행실과 삶으로서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2:7에서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실제로 직접 강의하고, 전도여행을 했지만, “위탁사상과 유모사상”을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가 복음의 주인이며, 사도는 대신 맡았다. 이것이 “복음의 본”이다.
위탁(委託) 사상이 중요한 이유는 성령의 능력 때문이다. 위탁사상이 없고, 바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했다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는 위탁이다.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전했으니, 그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행하신다.
애국(愛國)과 가족애(家族愛)는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족과 동족의 버림을 받았다. 가족과 동족을 위해 살았으나,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버림을 받았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해 “민족의 초월성”으로 선언한다. 2:14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고 했다. 가족과 동족으로부터 핍박과 박해와 멸시와 버림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작됨을 알리는 청신호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고, 버려짐이 없으면 부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