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은 왕벌을 보내심으로 역사를 일으키신다. 곧,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23:28에서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라고 했다. 여기서 “내가”는 하나님이요, “네 앞에”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요, “왕벌”은 하나님이 보낸 벌이다. 벌 봉(蜂)은 말벌이다.
“왕벌은 뭐죠?”
답은 “히위족속과 가나안족속과 헷족속을 쫓아낸 그 왕벌”이며, 말벌이 원어에 가깝다. 이 성경말씀은 새롭게 해석됨으로, 믿는 성도가 복음을 외치면 성령께서 행하심으로, 의심이 믿음으로 변화한다. 사람은 “믿음”으로 복음을 담대하게 외쳐야한다. 복음을 외치면, 복음이 전도한다.
그러나, 복음을 외침에 있어서 복음을 모르면 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겨자씨처럼 작은 성경말씀도 외워야하고, 복음을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숙지해야한다. 복음을 모르면, 무엇을 외쳐야할지 본인부터 헤깔린다. 엉뚱한 말을 외치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복음은 성경말씀이다. 핵심복음은 “십자가의 도(道)”이다. 십자가의 도(道)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세상은 “죄인”이 되어야한다.
그러므로, 본인부터 죄에 엎드려 십자가의 도(道)를 포로가 ‘적군의 깃발’을 높게 들 듯 그렇게 외쳐야한다. 영적 전쟁은 하늘과 땅의 전쟁이며, 사람은 본래 마귀에 속한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영원한 승리를 거뒀고, 그것을 믿는 자마다 마귀의 권력에서 주님의 권력으로 넘겨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붙잡힌 ‘포로’다. 주님께 속한 포로는 ‘자유’다.
어떤 종교단체는 “왕벌”을 “모세”로 풀이한다. 상당히 위험한 성경해석이다. 모세와 모세의 지팡이는 곧 “하나님의 지팡이”인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서 사용하므로 그렇게 된 것이지, 모세 자체가 하나님은 절대로 아니다. 모세조차 바로왕의 고집이 갈수록 강퍅해지니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10대 재앙이 선포될수록 바로왕의 정책이 강화되니, 모세도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가? 그렇게 의심했다.
바로왕이 “해방”을 선포하자, 급하게 홍해바다가 있는 곳으로 탈출했으나, 그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길로 가라고 해서 갔는데, 막다른 골목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성경의 어느 곳에, 모세가 모세를 구원했다고 한 곳이 있는가? 없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를 통해서 모세를 강물에서 건져 올렸다. 모세는 구원받은 백성의 지도자이다.
그러므로, 왕벌과 모세는 분리되어야 마땅하다. 모세와 10대 재앙이 분리되듯, 그러하다. 모세가 지팡이를 치자, 나일강이 피가 되었고, 이떼와 파리떼가 나왔고, 메뚜기떼가 몰려왔다. 이떼와 파리떼와 메뚜기떼처럼, 광야에 있었을 때 메추라기떼가 날라와서 이스라엘의 먹을 것이 되었다. 이떼, 파리떼, 메뚜기떼, 메추라기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행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이 다스려짐이 나타난 것이다. 홍해가 갈라진 것도, 우박이 쏟아진 것도 동일하다. 왕벌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실제로 싸웠다.
“왕벌”은 3군데 나온다. 출애굽기 23:28, 신명기 7:20, 여호수아 24:12이다. 관주성경을 보면 연관구절이 적혀 있다. 검색을 해도 그렇게 나온다.
[출23: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신7: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수24: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출애굽기와 신명기 말씀은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대권을 물려받고, 요단강을 건넜다. 이때, 우리가 유의해야할 것은 요단강 동편과 서편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갔고, 모세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모세는 이미 요단강 동편의 땅을 점령했다. 그 땅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다. 단지, 요단강 서편을 남겨둔 것이다.
여호수아를 통해 하신 말씀,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은 모세가 물리친 왕, 시혼과 옥을 뜻한다. 여호수아는 그 때, 실제로 전쟁을 했을 것이다. 모세가 산에서 기도를 하면, 여호수아는 전쟁터에서 적군과 싸웠다. 그러므로, 모세는 “왕벌”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았다. 왕벌은 “야생의 왕벌”이다. “활이나 칼로서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라고 했다. 만약, 모세와 여호수아의 군대가 시혼과 옥을 물리쳤다면, 왕벌로 행한 것은 칼과 활로 행한 것이 된다.
“내가 했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사람의 힘이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도우신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듯이 하나님을 행하시며,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앞에 겸허히 엎드릴지라!! 하나님은 왕벌과 땅벌과 만물과 천사와 사람을 통해서 이 땅을 실제로 통치하시면서 구원을 받을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여호수아서 12장에 보면, 모세때부터 시작된 정복전쟁의 업적이 나온다. 마치 광개토대왕비와 같다. 모세가 정복한 땅이 가나안 땅보다 훨씬 강력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死海)까지 흘러내리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이 있는데, 동편은 남왕국과 북왕국이 있었다. 남쪽 왕은 기혼왕, 북쪽 바산제국은 옥왕이다.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이 바로 기혼과 옥이다. 모세가 두 왕을 물리쳤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서 중심부를 공략하고, 남부전쟁과 북부전쟁을 마친 것이다.
모세는 아모리족 두 왕을 물리쳤고,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쪽 16명의 왕들, 북쪽 15명의 왕들을 물리쳤다. 요단강 동편은 두 명이지만, 훨씬 강대했다. 요단강 서편은 31명의 왕들이 다스렸고, 작은 부족왕들이었다. 모세가 요단강 동편에서 행한 일은 결코 작지 않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7년으로 끝났다.) 여리고성의 함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함락시킨 것이다.
이와같이, 왕벌은 하나님께서 쓰신 자연의 도구로서, ‘말벌떼 기습 전투기’였다. 내 인생을 살면서, 내가 행한 것보다 훨씬 많은 축복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 또한 하나님이 주신 특혜다. 십자가는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다.